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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슈크루트로 만든 ‘프랑스식 김치찌개’[정기범의 본 아페티]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입력 2023-10-11 23:36업데이트 2023-10-12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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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최근에 생텍쥐페리부터 카를 라거펠트에 이르기까지 단골로 들렀다는 생제르맹 거리의 유명 문학 카페, 레 되 마고 맞은편에 있는 브라스리 리프(Brasserie Lipp)를 찾았다. 알자스 출신인 레오나르 리프와 아내 페트로니유가 자신들이 살던 알자스 지역이 독일에 넘어가자, 파리에 정착해 1880년 10월 27일 문을 연 노포다. 이후 주인은 여러 차례 바뀌었으나 처음 문 열 당시 이름은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이곳은 1920년대부터 베를렌, 아폴리네르 같은 문인들이 드나들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가수 장폴 벨몽도,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모델 케이트 모스, 지휘자 로베르토 벤치, 조르주 퐁피두와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같은 정치인, 모델, 예술가들이 드나들어 카페 되 마고와 더불어 ‘살아 있는 위인전’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상하원들의 정치 회합 장소로도 인기인데, 여기서 매번 밥 먹고 토론하다 지각하는 상하원 의원들이 늘면서 의회 요청으로 시계를 몇 분 빨리 가도록 맞춰 놓았다는 일화가 있다.

브라스리 리프에서는 요일별로 바뀌는 고정 메뉴를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서비스하는 전통이 있다. 예를 들면 월요일에는 후추를 곁들인 쇠고기, 화요일에는 양고기 다리 부위, 금요일에는 버터를 넣어 조리한 홍어를 내놓는 식이다. 내가 가장 자주 시켜 먹는 메뉴는 알자스의 전통 요리인 슈크루트(사진)다. 흙으로 빚은 항아리에 얇게 썬 배추를 깔고 그 위에 소금을 뿌리고 그 위에 배추를 다시 얹는 식으로 반복해 채운 다음 맨 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아 간수가 생기게 해서 2개월 정도 숙성시켜 만드는 음식이다. 숙성이 끝난 후에는 간수로 발효시킨 흰 배추를 바닥에 깔고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어깨 부위, 훈제 햄, 삼겹살, 삶은 감자 등을 얹어 먹는다. 알자스의 화이트 와인과 함께 먹을 때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슈크루트는 배추를 소금에 절여 숙성시키는 우리네 김치의 맛과 닮았고, 삶은 소시지와 돼지 어깨 부위 등을 함께 먹는다는 점에서는 부대찌개를 연상케 한다. 1990년대 중반 프랑스에 처음 왔을 때 일이다. 3개월 먼저 어학원에 등록한 선배와 친해졌는데 그는 통조림의 나라 프랑스의 다양한 통조림을 내게 소개해줬다. 그중 가장 즐겨 먹은 것이 슈크루트 통조림이다. 선배의 집에서 처음 맛봤던 슈크루트 통조림 김치찌개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통조림을 열어 내용물을 냄비에 담은 다음 시골에서 어머니가 보내주셨다는 매콤한 고춧가루와 마늘을 넣어 만들면 훌륭한 김치찌개가 되는 간편식이었다.

그날 이후 선배와 ‘벽돌 깨기’ 하듯 통조림들을 섭렵했다. 어느 날은 선배 부엌에서 강아지가 그려진 통조림을 발견했다. 선배는 “개고기 같아서 데워 먹었는데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건 개 사료였다. 그는 분하다며 대신 슈크루트 통조림으로 만든 김치찌개를 매일 끓여 먹었다. 하지만 냄새 때문에 이웃의 항의가 거셌다. 한 번은 마른 오징어 굽는 냄새를 시체 썩는 냄새로 오인한 이웃이 경찰에 선배를 신고하기도 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선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갔다. 브라스리 리프에서 슈크루트를 먹는 동안 이 음식을 즐겨 먹었다는 톱 모델 케이트 모스와, 어쩌면 슈크루트 김치찌개를 그리워할지 모를 선배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정기범의 본 아페티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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