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의 공부는 넓은 의미로 생각해야 한다. 공부는 최선을 다해서 힘든 것을 견뎌내고, 자기 계획도 세워보고,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두뇌를 발달시키는 과정이다. 많은 것을 감당해내는 심리적인 그릇이 커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공부하는 기간’으로 정해져 있는 동안에는 누구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 뇌를 발달시키고 감당해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 기간이란 초중고 12년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부를 유독 잘하는 것은 사실 재능이다. 노래를 잘하거나 운동을 잘하는 것처럼 그 아이는 공부에 재능이 있는 것이다.
공부에 재능이 많은 사람은 공부로 먹고살고, 머리가 좋아도 공부 재능이 없으면 다른 재능으로 먹고살면 되는 것이다. 공부 재능은 매우 소수에 국한된다. 다수는 공부에 재능이 없다. 모든 아이가 노력한다고 노래를 최고로 잘 부르지 못하는 것처럼, 혹은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모두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는 것처럼 탁월하게 공부를 잘하는 것은 재능이다. 열심히 해도 재능이 없는 아이는 안타깝지만 ‘최고’는 되지 못한다. 그런 아이에게 모든 게 열심히 하지 않은 탓이라고 무섭게 다그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사람은 각자 재능이 다르고, 그에 맞는 일이 있다. 내 아이가 해야 할 일이 공부와 무관할 수도 있다. 지금 아이의 성적이 인생의 가치는 아니다. 내 아이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하도록 격려하지만, 최고가 아니면 끝이라는 식으로 비장할 필요는 없다. 공부의 성취는 자신의 능력만큼만 하면 된다.
언젠가 내게 치료를 받은 지 1년 반 정도 되는 여자아이가 헐레벌떡 진료실로 뛰어 들어왔다. 이 아이는 무척 산만하고 불안이 많았다. 아이는 고3이 되자 성적에 대한 압박과 불안이 너무 심해졌고, 고3 첫 시험을 망쳤다. 그렇게 성적이 떨어지니 더 불안해했고, 공부를 하려고 해도 더 집중이 안 됐다. 불안하니까 어떤 것도 손에 안 잡혔다. 나와 치료를 시작한 것은 고3 후반기였다. 아이는 그해 수능을 망쳤고, 1년 동안 재수를 하면서 치료를 받았다. 그러고 다음 수능을 너무 잘 봤다고 말했다. 내가 고생했다고 말하자 아이는 “저는요 원장님, 재수하는 동안은 고생 하나도 안 했어요. 마음이 너무 편했거든요”라고 말했다.
난 고3이 되는 아이들에게 “고3이면 공부 되게 많이 할 것 같지? 꼭 그렇지도 않아. 고2 때와 비슷할걸”이라고 말해준다. 아이들이 “진짜요?” 하며 눈이 동그래진다. “그래. 비슷해. 끝까지 열심히 하는 사람이 나중에 승리하는 거야. 그냥 꿋꿋하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느긋하게 버티면서 매일매일 하는 것이 최고야.” 이렇게 얘기하면 아이들이 좀 편안해한다.
아이를 공부시킬 때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재능이 없는 아이가 그 재능을 갖기를 바라며 빨리 많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면서 최선을 다할 수 있게 격려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가 자신의 능력만큼은 공부할 수 있다. 마음이 편안한 것은 학습 능력과 직결된다. 그리고 아이는 부모와 관계가 좋을 때 가장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