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감도의 아이들[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77〉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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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 당시에는 트라우마가 아니지만 맥락을 이해하게 되면 트라우마가 되는 사건이 있다. 이하라 히로미쓰(井原宏光)의 ‘아! 선감도’는 그러한 트라우마의 윤리성에 관한 고마운 소설이다.

안산에 있는 선감도가 배경이다. 1942년에서 1945년까지 선감학원이 그곳에 있었다. 당시는 섬이었다. 조선총독부는 수백 명에 달하는 부랑아들을 황국신민으로 키운다며 그곳에 수용했다. 아이들은 교관을 아버지라 불렀다. 교관 중에는 창씨개명한 조선인들도 있었다. 지옥 같은 곳이었다. 일부 아이들은 그 생활을 견디지 못해 바다를 헤엄쳐 도망치다 빠져 죽었다. 붙잡힌 아이들은 교관한테 맞아서 초주검이 되었다. 죽으면 사람이 아니라 번호가 죽었다. 아이들은 이름이 아니라 웃옷에 붙은 번호로 불렸다.

작가는 그러한 비극을 소설의 형태로 증언한다. 그는 선감학원 부원장의 아들로 일곱 살에서 열 살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어머니, 누나, 두 여동생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전쟁이 끝나자 가족은 일본으로 돌아갔고 그들 중 누구도 선감도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잊을 수 없었다. 그때 보았던 아이들의 비참한 모습과 사건들이 자꾸 머리에 떠올랐다. 당시에는 어려서 알지 못했던 일본제국의 만행을 알게 되면서 그 기억은 트라우마로 변했다.

선감학원의 비극을 세상에 알리는 일은 강박관념이 되었다. 그는 50번이 넘게 선감도를 찾아 그 일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1989년에 펴낸 ‘아! 선감도’가 그 결실이다. 그 소설이 나오고 나서야 선감학원의 비극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선감학원은 광복 후에도 폐쇄되지 않고 1982년까지 고아들을 수용하는 시설로 이용되었다.

선감학원 희생자들은 가야트리 스피박의 용어로 “스스로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하위자들”이었다. 하위자 중에서도 하위자, 밑바닥에서도 밑바닥인 가엾은 아이들을 대변해준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었다. 타자를 향한 그의 따뜻한 마음이 눈부시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선감도#선감학원#트라우마#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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