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공유
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불교는 과학이다”[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69〉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입력 2022-11-16 03:00업데이트 2022-11-16 03:28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미움이나 분노에서 선과 자비가 싹튼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달라이 라마가 그러하다. 티베트인들의 지도자인 그가 티베트인들의 적인 모택동을 애도한 것은 그래서다.

모택동이 누구인가. 중국인들에게는 “주체적인 역사를 회복시켜준 은인”일지 모르지만 티베트인들에게는 철천지원수였다. 모택동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은 고난의 장정을 통해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공화국을 세우자마자 서구 제국주의자들보다 “더 악랄한 제국주의자들로 표변”했다. 그들은 평화로운 불교국가 티베트를 침략해 100만 명이 훌쩍 넘는 티베트인들을 학살하고 사원을 파괴했다. 그들은 달라이 라마의 말대로 “공산주의를 가장한 쇼비니스트들”이었다. 달라이 라마가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 것도 모택동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모택동이 1976년에 세상을 떠나자 그를 애도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그를 찾은 도올 김용옥이 어쩌면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물었다. “그런데 왜 애도를 표시하셨습니까?” 그러자 그는 모택동으로 인한 고통과 그에 대한 분노를 통해 부처의 가르침을 깨닫고 마음의 평화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놀라운 답변이었다. “적이라 할지라도 그 적으로 인해 나에게서 생겨나는 선을 더 귀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진노의 불길” 속에 영원히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무리 진노가 강렬하다 할지라도 어느 순간에는 진노가 가라앉은 고요한 마음의 평화나 용서를 베푸는 그러한 감정의 전환 상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찾아온 “감정의 전환 상태”를 밀어내고 다시 진노의 불길 속으로 뛰어들지만 그것은 자멸의 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진노의 불길에서 생겨난 선을 붙들고 귀하게 키워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것이 부처가 말하는 수행이었다. 너무나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말이었다. 그에게 “불교는 과학”이었다. 그 과학이 용서할 수 없는 모택동을 용서하게 만들었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 최신뉴스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