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와 용서[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62〉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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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이 과하면 평정심을 잃는다. 유대인 프랑스 철학자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가 그러한 경우였다. 그는 학문적인 글에서도, 방송에서도 그랬다. “그들은 600만 명의 유대인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잘 자고 잘 먹고 잘 삽니다.”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으면 고통스럽고 궁상맞게 살아야 정상인데, 독일인들은 오히려 “경제적인 기적을 통해 피둥피둥 살이 쪄 잘만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자들을 용서하는 것은 사악한 농담입니다. 용서는 돼지들과 그들의 암퇘지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프랑스어 교사였던 어떤 독일 청년이 그의 말을 라디오에서 듣고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자신이 아무 유대인도 죽이지 않았으며 독일인으로 태어난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나치 범죄와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저의 양심은 깨끗하지 못합니다. 저는 수치심과 연민, 체념과 슬픔, 회의와 혐오감을 느낍니다. 저는 잘 자지도 못합니다.” 장켈레비치가 독일인을 돼지라고 표현하면서 간과한 것은 그 청년처럼 나치의 야만적 행위에 죄의식을 느끼고 때로는 잠을 설치고 악몽을 꾸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청년이 어찌 돼지일 수 있는가.

장켈레비치는 미움 때문에 평정심을 잃고 스스로 모순 속으로 걸어 들어간 학자였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해야 하는 의무에 대해 말했으면서도, 이십 년 후에는 자기 말을 뒤집어 독일인들을 돼지라고 표현하며 용서고 뭐고 없다고 발언한 것은 증오의 과잉 탓이었다. 그의 동료인 프랑스 작가는 장켈레비치의 증오감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독일 청년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광신적인 유대인은 나치만큼 나쁩니다.” 그의 말대로 장켈레비치는 미움이 지나친 나머지 닮아서는 안 되는 나치를 닮아갔다. 증오의 과잉이 그의 마음에 광기를 들어앉힌 거다. 증오의 과잉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아무리 옳더라도.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미움#평정심#돼지와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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