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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여성 화가의 시선[이은화의 미술시간]〈226〉

이은화 미술평론가
입력 2022-08-04 03:00업데이트 2022-08-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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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트 모리조 ‘와이트섬의 외젠’, 1875년.
미술의 역사에서 여성은 오랫동안 보이는 객체이자 그려지는 대상이었다. 보는 주체나 그리는 화가는 늘 남성이었다. 하지만 19세기 프랑스 화가 베르트 모리조는 달랐다. 자신만의 시선으로 남편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 많은 남성 화가들이 아내를 뮤즈 삼아 그렸듯이 말이다.

모리조는 인상주의 그룹에서 활동했던 세 명의 여성 중 한 명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국립미술학교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부유하고 예술적인 환경에서 자란 덕분에 개인 교습을 받아 화가가 되었다. 로코코 미술의 대가였던 장오노레 프라고나르의 후손답게 23세 때 처음으로 파리 살롱전에 당선된 이후 여섯 번이나 잇달아 입선하며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그러다 에두아르 마네와 가까워지면서 보수적인 살롱전 대신 인상파의 일원이 되었다. 역사적인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가 열렸던 1874년 겨울에는 마네의 동생 외젠과 결혼했다. 이 그림은 결혼한 이듬해 신혼여행으로 떠난 영국 남부 와이트섬에서 제작됐다. 그림 속 모델은 남편인 외젠이다. 그 역시 화가였으나 아내가 더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을 인정하고 외조의 길을 걸었다. 화면 속 외젠은 그들이 묵었던 호텔방 창가에 서서 밖에 있는 소녀와 여성을 바라보고 있다. 소녀는 배가 떠 있는 바다를, 엄마로 보이는 여성은 아이를, 외젠은 그 여성을 보는 듯하다. 인물들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화가는 이들 모두의 시선을 포착해 한 화면에 그려 넣었다. 창문턱 화분의 꽃들이 이들의 들뜬 기분과 행복을 대변하며 그림에 생기를 더한다.

이 그림에서 남성 화가들이 아내나 여성 모델을 그릴 때처럼 관능적인 시선은 찾아볼 수 없다. 따뜻하면서도 예리한 관찰자의 눈으로 해변의 모녀와 남편을 그렸을 뿐이다. 실제로도 가족과 모성애는 모리조가 평생 애정을 갖고 그렸던 대상이자 남성 동료 화가들과 차별화된 그녀만의 주제였다. 외젠은 이후에도 아내를 위해 여러 번 모델로 섰다. 여느 예술가의 반려자처럼 말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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