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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예술의 햇빛[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49〉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입력 2022-06-29 03:00업데이트 2022-06-29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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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충격적인 일을 겪은 당사자에게만 발생할 것 같지만 세대를 뛰어넘어 물려지기도 한다. 조경란 작가의 ‘복어’는 그러한 트라우마에 관한 사유로 가득한 소설이다.

할머니가 선택한 죽음이 소설의 한복판에 있다. 서른 살이었던 할머니는 복엇국을 끓여 자기 것에만 독을 넣어 먹고 죽었다. 그 모습을 밥상머리에서 지켜본 그녀의 남편과 어린 아들이 받은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문제는 그것이 두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 자리에 있던 어린 아들이 훗날 낳은 딸(주인공)은 어느 날 우연히 그 얘기를 엿듣게 된다. 생긴 것도 하는 짓도 자신이 할머니를 닮았다는 얘기까지. 그녀가 누군가 자신을 “따라다닌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다. 일종의 정신분열.

얼핏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 나중에 태어난 손녀까지 트라우마를 입는다는 것은 너무 비논리적이다. 그러나 비논리가 현실인 것을 어쩌랴. 트라우마가 무서운 것은 그러한 비논리 때문이다. 자살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손녀에게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할머니가 택한 극단적인 죽음의 방식에 그저 압도당할 뿐이다. 그녀는 거의 병적으로 할머니를 생각하고 같은 방식의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 할머니처럼 복어로.

그녀를 삶 쪽으로 돌려놓는 것은 어느 건축가의 따뜻한 마음이다. “건축이 추구하는 공통된 개념”이 편안한 둥지라고 생각하는 건축가. 그는 그녀에게 심리적 둥지가 되어준다. 그에게도 상처가 있다. 그의 형도 자살로 죽었다. 그가 고통스럽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압도당하지 않았다. 그는 조각가인 주인공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예술가잖아요. 표현할 수 있을 거예요.” 자신을 짓누르고 압도하는 것을 조각으로 표현해 보라는 조언이다. 트라우마가 무엇인가. 인간을 무질서의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그 어둠에 햇빛을 비추는 것이다. 예술이 그 햇빛일 수 있음은 물론이다. 때로는.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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