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중에도… 밥 먹을 때도… 유튜브와 사는 초등생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컬처 까talk]유튜브 시대 초등생의 삶

13일 서울 노원구의 한 음식점에서 윤주가 유튜브에 올릴 저녁 식사 장면을 찍고 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13일 서울 노원구의 한 음식점에서 윤주가 유튜브에 올릴 저녁 식사 장면을 찍고 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유튜브는 이제 아이들의 일상 그 자체다. 어른들이 과거 TV 속 연예인을 보며 환상을 키워왔다면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를 보며 인기 유튜버를 꿈꾼다. 부모들도 경쟁적으로 ‘자녀 유튜버 만들기’에 몰두한다. 유튜브는 단순한 동영상 시청 공간을 넘어 소통과 호기심을 해소하는 창구로 변하고 있다. 유튜브 시대에 사는 초등생의 일상을 관찰했다. 》
 
“다들 잘 살아 있지?”

13일 오전 10시 서울 노원구의 한 초등학교 수학 시간. 윤주(가명·11) 양은 필통 속에 휴대전화를 숨긴 채 실시간 방송을 켜고 조용히 말했다. 수업시간이었지만 친구 9명이 접속했다. ‘배고파ㅠ 2시간만 참자’ ‘ㅋㅋ너무 졸려’ ‘샤프를 바꿨더니 글씨가 예뻐졌다’ 등 대화가 오갔다.

“파공(파우치 속 화장품 공개) 할 사람∼.”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옆 친구가 소리쳤다. 아이 3명이 화장품을 가지고 모여 들었다. 친구들은 보름 동안 모은 용돈으로 산 틴트와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바르면서 저마다 동영상을 찍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교실에는 “지금 방송 켰으니까 빨리 들어와” “좋아요랑 구독 눌러” 등의 소리로 가득 찼다. 액체괴물을 주무르면서 방송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반 친구 35명 중 절반 이상이 유튜브를 이용한다.

이날 오후 6시 영어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온 윤주는 또 방송을 켰다. 그는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오늘 너무 더워서 화장이 다 지워졌다”고 읊조렸다. 하루 만에 윤주가 유튜브 계정에 올린 동영상은 5개. 논술학원을 가기 전 저녁을 먹어야 한다던 그는 “어제 친구들과 김치찌개를 먹는 ‘먹방’을 찍기로 했다”며 식당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어릴 때부터 유튜브를 보고 자란 ‘유튜브 세대’는 화장법을 찍거나(위 사진) 부모의 도움을 받아 ‘생활 밀착형’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유튜브 화면 캡처
어릴 때부터 유튜브를 보고 자란 ‘유튜브 세대’는 화장법을 찍거나(위 사진) 부모의 도움을 받아 ‘생활 밀착형’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유튜브 화면 캡처
○ 연예인보다 친근한 유튜버 따라하기

윤주는 입학 전부터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자랐다. 영어 만화부터 아이돌 뮤직비디오까지 기존 TV의 역할을 유튜브가 완전히 대체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익숙하게 사용해 온 이른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일상은 유튜브 그 자체였다.

걸그룹 춤을 따라하던 아이들은 이제 유튜버를 모방한다. 연예인보다 더 친근하고 ‘생활 밀착형’ 콘텐츠 위주라 따라하기도 쉽다. 한 유튜버의 ‘엄마 몰래 라면 끓여먹기’ ‘친구 놀래키기 몰카’ 등 동영상을 보고 아이들은 유사한 내용의 동영상을 본인 계정에 찍어 올린다. 조회 수가 높지 않아도 친한 친구들끼리 댓글로 ‘그들만의’ 소통이 이어진다. 성인들의 ‘단체 카톡방’과 유사하다. 하모 씨(44·여)는 “먹방을 꼭 틀어야지 아이가 밥을 먹는다”며 “먹방을 보고 탕수육을 시켜 먹자고 할 때도 있다”고 했다.

‘집중하는 법’ 등 공부법(?)부터 성장기 아이의 고민들도 유튜브가 해결해준다. ‘브래지어 하는 법’ ‘초등학교 생리 대처법’ ‘5학년 몸무게’ 등 관련 동영상 댓글에 다른 고민 글을 올리고 답을 얻는다. 김민지 양(12)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물어보기 부끄러운 것들을 찾아본다”며 “친구들끼리 영상을 서로 공유하기도 한다”고 했다.

개인 계정을 이용해 아이들이 실시간 방송을 하려면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 만 14세 이상부터 구글 계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영·유아 대상 ‘유튜브 키즈’ 애플리케이션(앱)이 있지만 대부분 초등생들은 부모의 동의하에 성인들이 이용하는 유튜브 앱을 이용한다. 부모 휴대전화를 이용해 몰래 계정을 만드는 아이들도 있다. 11세 아들을 둔 유모 씨(38·여)는 “요새 아이들의 주요 대화 주제는 유명 유튜버”라면서 “유행에 아이가 뒤처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 아이 유튜버 만들기 광풍

아이들 대상 유튜브 콘텐츠는 ‘핫’하다. 한 초등생이 올린 ‘연예인 메이크업 따라잡기’ 동영상은 조회수 103만 회를 기록했다. 이렇다 보니 부모들 사이에서 자녀를 유튜버로 키우려는 열풍마저 분다.

온라인 사이트 맘카페에는 “4세짜리 아들을 유튜버로 만들고 싶어요” “갓난아이로 유튜브 하시는 분 계신가요” 등의 글이 올라와 있다. ‘유튜버로 돈 버는 법’ ‘아이 유튜버 만들기’ 등 인터넷 유료 강의도 인기다. “검색어 중복을 피하라” “첫 화면을 잘 꾸며라” 등 조회 수를 늘려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팁이 대부분이다. 정모 씨(42·여)는 6세짜리 딸아이를 유튜버로 키우기 위해 동영상 제작 프로그램 ‘프리미어 프로’ 강의를 듣고 있다. 정 씨는 “부업으로 수익도 얻고 아이가 나중에 자기소개서 등에 ‘유튜버’라는 경험 사례를 쓸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다”고 했다.

구독자 57만 명을 끌어모은 ‘마이린TV’ 최린 군(12)의 아버지 최영민 씨(47)는 “유튜브를 시작한 3년 전보다 부모들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했다. 성공 비법을 공유해 달라는 부모도 많다”며 “유행을 타 무작정 뛰어들기보다 광고 수익, 인기 콘텐츠 분석 등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유튜브 동영상#유튜버#마이린tv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