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의 갯마을 탐구]〈21〉그물에 걸린 시신에 예를 다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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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가엾은 주검들이 동구 밖에 누워있다. 풍랑에 배가 뒤집혔다. 바다에서 단련된 사내들은 검은 파도의 공포를 느끼며 생을 마감했다. 그 주검들이 거적 위에 나란히 누웠다. 바닷가 마을은 일시에 음산한 기운에 휩싸였다. 어둠이 깔리면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 주검을 두려워했다.

1980년대 초반, 필자가 남해의 섬에 살며 겪었던 유년기의 기억이다. 장례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주검을 뉘었던 동구 밖 언덕배기는 기피의 공간이었다. 원혼이 떠돌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동네 조무래기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그곳을 지나다니기를 꺼렸다. 우리의 전통적인 죽음관에는 천수를 누리고 집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조상신이 된다. 반면 밖에서 사고로 죽거나 혼인을 못 하고 죽으면 객귀, 몽달귀, 처녀귀 등의 원혼이 된다. 원혼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주변을 떠돌며 산 사람에게 해코지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결혼을 못 하고 죽은 젊은 남녀를 혼인시키는 사자혼례식을 치르기도 했다. 죽은 이의 한을 풀어서 산 사람의 안녕을 도모한 것이다.

갯마을에서의 삶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누구나 만선의 꿈을 품고 출항하지만 시시때때로 빈 배로 입항한다. 과거에는 날씨 예측을 선장의 경험에 의존했기에 예상치 못한 풍랑에 난파돼 목숨을 잃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농촌에 비해 어촌 주민의 삶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의지할 곳을 필요로 한 어촌 사람들은 다양한 민속신앙에서 위안을 얻었다.

기상예보의 정확도가 높아졌고, 어군탐지기 등 최신의 장비를 장착한 지금도 바다에 생명을 의탁하고, 바다가 내어주는 만큼의 물고기를 잡을 수밖에 없는 삶의 불안정성은 여전하다. 그래서 바다를 관장하는 용왕에게 제를 지내기도 한다. 바다거북이 그물에 걸리면 술을 먹여 대접한 후 다시 바다로 돌려보낸다. 거북을 용왕의 대리인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칼을 바다에 떨어뜨리는 것은 용왕의 등에 칼을 꽂는 행위로 간주되어 금기시된다. 용왕의 실재를 믿지 않더라도 거친 바다 위에서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에 의지할 대상을 필요로 했다. 연평도에 거주하며 꽃게잡이 어업을 조사할 때의 일이다. 어선이 조업 중 시신을 건져서 입항했다. 선원들이 시신을 수습해 차분히 해경에 인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연평도에서는 매년 한두 번은 시신이 그물에 걸려서 올라온다. 한강, 예성강, 임진강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물길이 연평도 근해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시신을 발견하면 배를 돌려서 선박의 왼쪽으로 끌어올린다. 뱃사람들의 오랜 관습이다. 시신을 잘 거둬주면 해상 안전과 풍어를 불러온다고 믿는다. 반면 시신을 발견하고도 외면하면 저주를 받아서 물고기를 잡지 못하게 된다고 여긴다. 어민들의 속신(민간신앙의 일부로 주술적 함축성이 짙은 신앙체계)에는 자연과 인간을 대하는 삶의 자세가 녹아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 제액과 기복에 대한 소망, 신에 대한 인간의 경배와 인간에 대한 신의 태도가 담겨있다. 어민들의 속신은 현대인에게 미신이고, 거부해야 할 것으로 치부되지만 수천 년 동안 그들과 함께하며 위로해 준 손길이었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어민들의 속신#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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