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잘 익은 ‘쉰’을 보내기[이재국의 우당탕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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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나는 요즘 50세를 몇 년 앞두고 심기가 불편하다. 이유는 50세를 우리말로 ‘쉰’이라고 부르는 데서 시작됐다. 쉰이라는 말만 들으면 왠지 ‘쉬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더 이상 신선함이 없는 인생처럼 느껴져 자꾸만 한숨이 나온다. 40세는 마흔이고 60세는 예순인데 50세는 왜 쉰일까. 쉰이 되면 정말 내 인생은 쉰 옥수수나 쉰밥처럼 이제 먹으면 안 되는 맛이 간 음식 취급을 받게 되는 걸까? 가뜩이나 주변에서 남성 갱년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자신감이 떨어졌는데, 쉰이라니. 나는 아직 팔팔하고 생생한데 쉰이라니. 처음 스무 살이 됐을 땐 어른 흉내 내고 싶어서 너무 좋았고 서른이 됐을 때 ‘서른 즈음에’를 들어도 서글픈 기분은 아니었다. 그런데 쉰을 앞두고 쉰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마음이 약해지고 있다. 때마침 읽고 있던 책에서 ‘마을 사람들은 이 일에 관심이 없는지 서로 쉰밥 미루듯 했다’는 문장을 보고 나는 쉰의 어원을 찾아보기로 했다.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숫자의 어원이나 세소토어(語)의 유래를 근거로 해보자면 우리말 50세를 뜻하는 쉰은 세소토어 ‘shwalane(쇄안)’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쇄안은 ‘해질녘의 어스름’이나 ‘쇠퇴나 쇠망’을 뜻하고 우리말로 표기하자면 ‘쇄안-쉬안-쉰’으로 변화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리고 옛날에는 평균 연령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인생을 50세까지 살았으면 이제 해질녘처럼 끝날 때가 됐으니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자는 의미에서 쉰이라고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음, 쉰의 어원을 찾아보고 나니 마음이 더 쓸쓸해졌다. 요즘 나이대로 보자면 주목받고 있는 두 세대가 있다. 일단 젊게 사는 40대를 부르는 말 ‘영포티’. 권위적이지 않고 자기 인생을 자유롭게 즐기는 1970년대생을 의미한다. 그리고 또 주목받는 세대가 ‘뉴실버’로 불리는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이다. 은퇴했다고 해서 귀농하거나 집에서 여가만 즐기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경제활동도 하면서 여전히 자신의 꿈을 이루며 사는 분들이다. 지금도 매주 “전국∼ 노래자랑”을 외치며 방방곡곡을 돌아다니시는 국민MC 송해 선생이나 요즘도 꾸준히 연기자와 예능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이순재 선생, 그리고 65세에 뒤늦게 모델로 데뷔해 바쁘게 살고 계시는 모델 김칠두 선생이 모두 뉴실버라 불리는 분들이다. 영포티도 있고 뉴실버도 있는데 멋진 50대를 표현해주는 수식어는 왜 없을까? 내 생각에는 쉰으로 시작되는 50대를 잘못 보내면 인생이 정말 쉬어버리고 맛이 가버리기 때문에 50대를 정말 잘 보내야 뉴실버나 골든실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쉰내 나는 50대가 아니라 신선하고, 잘 익은 50대가 될 수 있을까? 난 취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내 주변에 친구나 형, 누나를 보면 취미가 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취미 하나 갖지 못한 채 쉰을 맞이하게 되면 하루하루 인생에 신선도가 떨어지고, 사는 맛도 안 나서 스스로 마음이 쉬어버린 진짜 쉰내 나는 쉰 살이 될 수 있다. 금방 담근 겉절이는 겉절이만의 맛이 있고, 신맛이 일품인 묵은지는 묵은지대로 맛이 있지만 완전히 쉬어버린 음식은 버릴 수밖에 없다. 쉰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인생의 맛을 더해줄 취미를 미리미리 개발해서 영포티나 뉴실버처럼 쉰에도 멋진 수식어를 하나 선물받았으면 좋겠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50세#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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