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 칼럼]운과 함께, 신과 함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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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영화 ‘신과 함께’가 퍼뜨린 공감의 메시지 ‘착한 끝은 있다’
저승 아닌 이승에서 받는 선행의 보상, 運의 법칙
운은 도덕성에서 싹트고 노력한 만큼 모을 수 있지만
무거운 책임이란 것도 기억해야

고미석 논설위원
고미석 논설위원
올해 처음 천만 고지를 밟은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의 메시지는 단순명쾌하다. ‘착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 어려서부터 어른들에게 귀에 못이 박이게 듣던 바로 그 단골 멘트 아니겠는가. 오래도록 살아남은 ‘권선징악’의 교훈. 어느덧 막장 연속극의 마무리 공식이 됐으나 이 영화는 막장 없이도 세대 불문 공감을 얻어냈다. 주인공인 착한 남자 자홍은 7개 지옥을 통과하면서 생전 행적에 대한 재판을 받는다. 알게 모르게 누군가 가슴에 얼마나 깊고 지울 수 없는 멍을 남겼는지 하나하나 되짚는 여정이다.

‘신과 함께’에서 감동을 받은 이라면 어쩌면 새해 목표로 운동, 외국어 공부 같은 항목에 ‘착하게 살자’ 하나를 더 추가해 마음을 다잡았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저승세계의 심판을 통해 오늘의 삶을 성찰하게 한다면 일본 변호사 니시나카 쓰토무의 책 ‘운을 읽는 변호사’는 보다 현실적으로 접근한다. 선한 마음과 행동은 사후가 아니라 생전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1만 명 가까운 의뢰인의 행불행 유형을 분석해보니 운을 부르는 습관은 도덕적 감성에 귀결되더라는 것. 사후 심판은 멀게 느껴질지 몰라도 이승의 행운이라면 귀가 솔깃해질 것이다. 그는 단언한다. 내가 받은 은혜는 ‘도덕적 부채’라고. 이 엄연한 빚을 제 것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오만함이야말로 운을 갉아먹는 곰팡이라고. 그러면서 덧붙인다. 불운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인생이라고.


권선징악만큼 유구한 토정비결이 앱으로도 대목을 맞은 것을 보면 새해 운수에 대한 호기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 같다. 운이 좋다는 말은 대개 투입한 노력보다 좋은 결과가 나올 때 쓴다. 특히 요즘은 돈복, 재운(財運)을 격렬히 탐한다. 하지만 니시나카 씨의 경험에 비추면 이는 되레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유념할 대목이다.

젊은층이 열광하는 비트코인으로 돈벌기가 그런 사례가 아닐지 싶다. 10명 중 6, 7명은 2030세대라는데 카페에 가도, 엘리베이터에서도 온통 비트코인이 화제다. 어떤 방송프로그램은 8만 원을 280억 원으로 불렸다는 23세 청년의 이야기를 만천하에 소개했다. 인터뷰하는 2시간 동안 30억 원이 늘어났다던가. 이 억세게 좋은 운은 어디에서 왔는가. 또 어디로 가는가. 가만있으면 손해 보는 느낌에 사로잡혀 너나없이 뛰어드는 모습이 아슬아슬해 보인다. 전설적 골프선수 잭 니클라우스는 자기 실력으로 우승할 경우도 있지만 상대가 실수나 오판으로 바친 승리도 많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이런 운의 공식은 개인뿐 아니라 넓은 범위로 적용 가능한 것임을 지난해 탄핵과 대선을 통해 우리는 또 한 번 배운 바 있다. 촛불과 태극기집회의 기부금 수사에 대한 형평성 논란, 시민단체 경력을 공무원 호봉에 반영하겠다는 놀라운 발상을 내고 또 거둬들이는 씁쓸한 모양새가 그런 것들이다. 대선 승리의 운을 이렇게 야금야금 까먹어서 이를 곳은 어디인가.

케이블 방송에 소개된 일드 ‘중쇄를 찍자’에 보면 운 총량의 법칙이 나온다. 드라마에 등장한 대형 출판사 사장은 우연히 얻은 1등 복권을 돈으로 바꾸지 않고 손녀딸의 종이접기용으로 내준다. ‘태어날 때 운은 달라도 좋은 일을 하면 운은 모을 수 있다.’ 방황하던 젊은 시절, 이 한마디를 듣고 평생 화두로 삼은 그는 일상 속 선행으로 차곡차곡 운을 쌓는다. 그리고 정해진 운의 할당량이 있다면 자신이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일에 사용하겠다는 결심으로 돈 욕심을 내려놓았다. 돈의 독에서 풀려난 것이다.

인생의 길흉화복은 맞물려 돌아간다고 했던가. 한번 운이 좋으면 다른 길에서 막다른 골목과 마주칠 수 있는 법. 예전 TV에서 평범한 중년여성이 운을 정의하는 방식을 듣고 무릎을 쳤다. “운(運)과 공(功)은 같은 말이다. 왜 나는 지지리도 운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공을 더 들이라는 뜻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불평하기보다 노력했고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성취했다.” 나보다 훌륭한 재능에도 나보다 운이 박한 사람이 있고 그 반대도 있다. 게으르게 불평하는 내가 있고 그 반대도 있다. 비교 대상은 나 자신뿐. 곁눈질할 필요는 없다.

한창 운이 좋다 해도 오만은 금물. 돈이든 재능이든 권력이든 하늘의 호의가 계속된다 해서 내 권리로 착각해선 안 된다. ‘오만은 신이 내린 천형(天刑)’이란 말이 왜 생겼을까. 내가 들인 공보다 과하게 누리는 운은 언젠가 세상에 되돌려줘야 할 빚이다. 한없이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아니면 죄가 되고 벌이 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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