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영화 톡톡]‘극한직업’에서 읽는 1000만 영화 성공 비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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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이 대사는 관객 수 1560만 명(2월 28일 현재)을 돌파하고 1위 ‘명량’(1761만5437명)에 이어 역대 관객 수 2위 자리에 오른 영화 ‘극한직업’ 속 대사입니다. 2003년 영화 ‘실미도’를 시작으로 2019년 극한직업까지 국내에서는 23편의 영화가 1000만 관객 신화를 이뤄냈습니다. 1000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대박 날 줄 알았어!

“극한직업을 개봉하자마자 봤어요. 팝콘을 샀는데 웃고 집중하느라 반은 남겼죠. 설 연휴라 흥행하겠다 싶었는데 1000만 명을 금세 넘겼더라고요. 영화에 치킨이 계속 나오는데 그날 야식으로 결국 치킨을 시키고 말았어요. 인터넷에 영화 속 ‘수원왕갈비치킨’ 레시피도 올라왔던데, 해먹어보려고 캡처까지 했고요.”―이승민 씨(26·어학원 조교)

“극한직업이 1000만 관객을 넘은 뒤에야 뒤늦게 극장을 찾았어요. 입소문 덕인지 여전히 사람이 많아서 맨 앞자리에서 봤죠. 배우 류승룡이 나오는 영화를 특별히 재밌게 본 적 없었는데 극한직업은 재밌더라고요.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대사 부분에서 제일 많이 웃었던 것 같아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패러디를 들으면 1000만 영화의 힘을 실감해요.”―최정민 씨(29·회사원)

“다 큰 성인 남자 취향이 어째 그러냐고 많이들 놀리기는 합니다만…. 제 인생작은 ‘겨울왕국’이에요. 애니메이션이지만 유치하지 않았어요. 특히 눈사람 캐릭터 ‘올라프’의 ‘누군가를 위해 녹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냐’라는 대사는 감동이었죠. 적절한 OST도 한몫했고요.”―한승현 씨(23·대학생)

흥행 비결은 바로 이것

“영화는 ‘시기’가 중요해요. 사람이 몰리는 시기를 노리는 거죠. 이번처럼 연휴 낀 (영화)성수기에는 예측보다 더 많은 관객 수를 기대해요. 설에는 가족끼리 함께 보기 좋은, 재밌고 오락성 있는 장르가 유리한데 마침 극한직업이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영화다 보니 시기와 잘 맞아 흥행 물살을 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영화 홍보사 관계자

“1000만을 달성한 ‘7번방의 선물’과 ‘변호인’이 사전 시사회를 기점으로 입소문이 형성되었다면, ‘부산행’은 이미 개봉 전부터 입소문이 시작됐습니다. 개봉(2016년 7월)을 한참 앞둔 5월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외신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현지의 뜨거운 반응이 국내로 넘어와 흥행몰이를 했어요. 그 결과 19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했죠. 동시에 국내외 투 트랙으로 홍보에 힘썼습니다. 해외에선 전 세계 같은 시기에 개봉했고, 국내에선 기대감과 호기심 높이기에 주력했어요. ‘좀비’ 소재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 ‘재난 블록버스터’를 강조하기 위해 좀비 대신 ‘감염자’로 명명했고, 시각적 노출을 최소화해 극장에서 확인하도록 했죠.”―영화 투자 배급사 NEW 관계자

“1000만 영화의 핵심은 잘 맞는 옷을 입은 듯한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라고 생각해요. 천연덕스러움 덕에 많은 관객이 그 캐릭터에 더 공감하지 않았을까요? 극한직업으로 1000만 관객을 기록하신 진선규 선배를 본 적이 있는데, 지켜만 봐도 완벽히 준비된 배우라는 느낌이었어요. 그렇기에 맡은 역할을 잘 소화해냈고, 1000만이라는 관객이 공감한 거죠.” ―고기영 씨(27·연극영화배우)

네가 보면 나도 본다

“예매 전에 ‘뭐가 재밌어요?’, ‘뭐가 제일 인기 많아요?’라고 묻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면 예매율 기준 1, 2위 영화를 추천해드리죠. 예매율 높은 영화의 좌석 현황을 보여드리면 자리가 얼마 없어도 ‘이게 재밌는 건가 봐’하면서 예매하시죠.”―장혜인 씨(23·영화관 아르바이트)

“예술·독립영화를 좋아해요. 하지만 상영하는 곳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예요. 얼마 전 ‘어느 가족’을 보려고 했는데, 딱 한 영화관에서 하루 두 번 상영하는 게 전부였죠. 대형 배급사 영화는 개봉 첫날부터 거의 전 상영관, 10회 이상의 회차를 차지하잖아요. 다양성 영화를 보고 싶어도 선택지 자체가 없죠. 그러다 보니 요즘은 넷플릭스를 이용해요.”―이연정 씨(25·취업준비생)

“영화가 흥행하면 자연히 상영관 수가 늘고, 여러 시간대에 내걸리죠. 하지만 흥행작이 아니라고 아무 시간대에 넣거나 배제하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이번에 극한직업이 흥행했잖아요. 그러면 극한직업을 우선시하되 다른 개봉작들을 아예 버리지는 않아요. 관객이 극한직업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 2차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짭니다.”―멀티플렉스 영화관 매니저

“스크린 편성은 다양한 기준에 의해 이루어져요. 사전 인지도, 관람 의향, 관객 평가부터 제작비, 배우 인지도, 감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그렇게 편성해도 예측대로 관객이 오는 것은 아니에요. 그 예로 최근 개봉했던 ‘마약왕’은 700만 관객이 관심을 가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200만 명도 오지 않았죠. 반대로 ‘보헤미안 랩소디’는 150만 명을 예상했지만 1000만 명 가까이 관람했고요. 개봉 후 관객의 냉정한 평가가 이루어진 것이죠. 즉 1000만 영화는 정해진 것도 아니고, 많이 편성을 한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관객이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탄생하는 것입니다.”―황재현 CGV 홍보팀장

“우리에게 메뉴를 고를 자유는 있지만 메뉴판을 구성할 자유는 없어요. 그럼 구성해주는 사람들이 좀 더 공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죠. 하지만 상업성을 중시하다 보니 선택지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어요. 영화도 마찬가지로 고를 것이 적으니 관객이 쏠릴 수밖에요. 시장에 나온 것을 전부로 여기고 그 이상을 바라거나 찾지 않으면 영화는 대중문화가 아닌 오락거리로만 남겠죠. ‘멋진 신세계’에서 영화가 쾌락을 위한 용도로만 사용된 것처럼요.”―장효선 씨(28·영화 관련 산업 종사자)

잃어버린 취향을 찾아

“최근에 ‘가버나움’을 봤어요. 보고 나서 형용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이 들더군요. 잠들기 전까지도 생각날 정도로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싶어 여기저기 추천하고는 있지만 상영관이 얼마 없어서 아쉬워요.”―이모 씨(26·대학원생)

“일반 영화관에는 대중적 영화, 상업영화가 많잖아요. 그런 영화들을 통해 스트레스를 푼다는 장점도 있죠. 하지만 독립영화관에서는 그곳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영화’를 보여준다고 할까요. 혼자서도 종종 가고, 남편과 데이트하러 가기도 해요. 이번에는 ‘로마’를 볼 거예요. 곧 상영이 끝난다니 마음이 급하네요.”―김영희 씨(50대·영어학원 강사)

“영화를 전공하며 단편영화들을 제작했어요. 참여한 작품들을 다양한 곳에서 상영하지 못해 아쉬웠죠. 단편·독립영화는 획일화된 구성 방식에서 좀 더 자유롭고, 다양한 감독 스타일을 볼 수 있어 매력적이에요. 소재가 친근한 경우도 많고요. 하지만 예술독립영화관을 찾는 관객 수가 현저히 감소한 것만 보아도, 독립영화를 원하는 수요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죠. 이런 상황에서는 대형 배급사의 상업영화를 탓하기보다 독립영화만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오모 씨(30대·독립영화배급사 대표)

신무경 기자 yes@donga.com·정혜리 인턴기자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졸업
#극한직업#1000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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