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변종국]GM이 떠난 두 도시, 군산과 미국 제인즈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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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국 산업1부 기자
변종국 산업1부 기자
한국GM 군산공장이 폐쇄된 지 1년. 군산산업단지에는 불안과 무기력함이 어둠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인근의 한 식당 주인은 문을 닫고 떠난 업체들로부터 1년 동안 받지 못한 외상 식비가 3000만 원에 이른다고 했다. 매일 아침 인건비와 식자재비 걱정에 시달리는 주인은 “차라리 암에 걸려 죽고 싶다”는 극단적인 말까지 했다.

한국GM에서 20여 년간 근무했던 직원은 “재취업 교육도 단순한 자격증 따기에 불과해 취업으로 연결이 되겠느냐”며 허탈해했다. 지역 주민들에게서는 “수백억 원 지원을 했다고 하는데, 나한테는 왜 1원 한 푼도 안 오냐”는 하소연까지 나온다. 군산 주민들은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다’가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다’는 말이 어울렸다.

군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미국 위스콘신주에 위치한 ‘제인즈빌’이라는 도시가 떠올랐다. GM은 1923년 2월 14일 제인즈빌에 공장을 세우고 쉐보레 브랜드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제인즈빌은 유명 볼펜인 ‘파커펜’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여기에 GM까지 들어오자 인구 6만4000명의 작은 도시 제인즈빌은 부유한 도시로 성장했다. 2008년 성탄절을 이틀 앞둔 날, GM이 제인즈빌 공장을 폐쇄한다고 발표하기 전까진 말이다.

워싱턴포스트 기자 에이미 골드스타인은 제인즈빌의 GM공장 폐쇄 결정 이후 5년 동안 벌어진 이곳의 삶을 추적해 ‘제인즈빌’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직장을 잃은 GM 근로자와 납품업체 직원, 상점 및 물류업에 종사하던 사람 등 GM과 얽힌 주민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담았다. 이 책은 정부가 실직자들의 재취업을 돕고자 수백억 원을 쏟아부으면서 ‘블랙호크기술대’로 보낸 정책도 분석했다.

‘제인즈빌’의 마지막 장엔 재취업 교육의 성과를 분석한 자료가 있다. 주 정부 통계와 보험료 등 꽤 신빙성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전문가들과 재취업 교육의 취업 성과를 분석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2011년을 기준으로 재취업 교육을 받은 실직자의 61.7%가 직업을 구한 반면 교육을 받지 않은 실직자들은 오히려 72%가 직업을 구했다. 심지어 교육을 받지 않은 실직자들의 분기별 평균 임금은 6210달러(약 690만 원)로 재취업 교육을 받은 실직자(3348달러)보다 많았다. 각종 정부 지원이 왜 원하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는지 저자는 명확히 설명하진 않는다. 다만 제인즈빌에는 GM만큼 돈을 주는 일자리도, 재취업 교육을 이수한 실직자들을 모두 받아줄 일자리도 없었다고 한다.

한국 정부도 군산에 생활자금은 물론이고 각종 재취업 프로그램에 수백억 원을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재취업 교육을 받은 군산 주민들도 막상 군산에서 일자리를 찾기는 요원하다. 정부가 계획하는 ‘군산형 일자리’가 과연 군산공장 폐쇄로 사라진 직간접 일자리 1만 개를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지역에서조차 반신반의하고 있다. 군산 주민들의 삶을 제자리로 돌릴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1, 2년 단위의 고용률이나 재취업률을 올리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결코 답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변종국 산업1부 기자 bjk@donga.com
#한국gm#군산산업단지#제인즈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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