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염희진]샬롯과 브니는 인간의 일자리를 뺏어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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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희진 산업2부 기자
염희진 산업2부 기자
10년 전 개봉한 애니메이션 ‘월-E’에는 폐허가 된 지구에 홀로 남아 폐기물 분리수거를 하는 로봇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로봇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수백 년 전 인간의 흔적을 발견하며 슬퍼한다. 반면 오염된 지구를 버리고 우주로 대피한 인간들은 비(非)인간적 존재로 묘사된다. 걷지 않고 의자에 누워 이동하는 인간은 로봇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인공지능(AI)이 산업 곳곳에 도입되며 인간의 업무를 로봇이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기업들은 면접 전형은 물론이고 데이터 분석, 보고서 작성 등을 로봇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유통·소비재 분야에도 AI가 활발하게 적용되며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등 유통업체뿐만 아니라 의류 디자인에도 AI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AI 덕분에 단순작업의 속도가 빨라졌고 결과물에도 큰 차이가 없어, 이대로 가면 로봇이 인간을 대신할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패션기업 한섬은 최근 패션업계 최초로 AI를 적용한 의류를 선보였다. 한섬의 소속 브랜드인 SJYP가 ‘스타일 AI’에 브랜드 로고와 캐릭터 이미지 등 빅데이터를 제공하면 이 가운데 AI가 브랜드 정체성에 맞는 콘셉트를 채택해 의류를 제작한다. 이 기술을 구현한 스타트업인 디자이노블의 신기영 대표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AI는 디자이너가 될 수 없다”고 확신했다. 아무리 AI가 진화한다고 해도 창작과 최종 판단은 엄연히 인간의 몫이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단순작업을 줄여 인간이 더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AI의 의미를 찾았다. 그는 스타일 AI의 미래를 ‘똑똑한 어시스턴트(조수)’로 정의했다.

롯데백화점이 지난해 12월 내놓은 AI 챗봇(채팅봇)인 ‘샬롯’의 담당자도 비슷한 얘길 해줬다. 그는 “샬롯을 운영해보니 맥락에 맞는 언어를 구사하는 데 한계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인간이 새로운 언어 정보를 끊임없이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가치를 찾아 이를 기업 전략에 맞게 활용하는 데이터 정제 분야가 향후 AI의 화두가 될 것이며, 이를 맡을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유망한 직업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도 고객 응대와 결제를 맡고 있는 AI ‘브니’를 도입했지만 발주를 비롯해 진열, 청소 등 매장관리 업무는 여전히 사람이 한다. 앞으로 AI가 진화하며 편의점 무인화가 진행되더라도 AI를 관리하는 사람은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은 ‘인간에게 어려운 일은 기계에게 쉽고, 기계에게 쉬운 일은 인간에게 어렵다’고 했다. 이 ‘모라벡의 역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AI를 통해 인간은 더 세분화되고 다양한 새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영화 ‘월-E’처럼 인간이 로봇이 주는 편리함에 젖어 무능한 존재가 되는 일은 영화적 상상에 불과하리라 믿는다.
 
염희진 산업2부 기자 salthj@donga.com
#월-e#로봇#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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