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정세진]잃어버린 ‘자원외교’ 자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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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진 산업부 기자
정세진 산업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9월 할트마 바툴가 몽골 대통령을 만나 “형제 같은 나라”라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한국에 관심이 많다”고 화답한 바툴가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은 신(新)북방정책과 대북제재 참여를 호소했다. 의례적인 외교 수순이었다.

바툴가 대통령은 실제 한국에 관심이 많고 인연도 깊다. 2008∼2012년에 도로건설교통부 장관을 지낸 그는 당시 몽골에 사무소를 둔 한국 공기업에 딸의 취업을 부탁할 정도로 한국인과 가까웠다. 바툴가 장관의 요청에 한국 측은 몽골 기자단을 한국에 초청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측 인사에게 “큰 빚을 졌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 자원외교를 위해 쌓은 네트워크가 정권이 바뀌면서 사라져 현 몽골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한국인도 모두 몽골을 떠났다고 당시 몽골 사업에 관여한 인사는 전한다.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한다. 지금은 적폐 청산의 대상인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장관이던 친한파가 지금은 대통령이 됐지만 그에게 한국의 국익(國益)을 위해 부탁할 수 있는 한국인은 모두 현직을 떠나거나 검찰 수사 대상이 됐다.


전기자동차 배터리에 필수요소인 리튬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볼리비아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은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특사 자격으로 볼리비아를 방문한 이 전 의원은 모랄레스 대통령과 수차례 만나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후발주자이던 한국이 중국을 따돌리고 볼리비아 리튬 개발 우선사업권을 따낸 배경이다. 하지만 정부가 바뀐 이후 당시 사업 컨소시엄을 이끌던 포스코는 볼리비아 사업에서 철수했다. 볼리비아 정부가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회사가 한국 새 정권의 눈치를 봤다는 게 현지 주재원의 주장이었다.

그사이 중국은 한국을 대신해 지난해 하반기(7∼12월)에 드디어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의 실증 플랜트에서 10t의 탄산리튬을 생산해 자국으로 반입했다. 한국에서는 자원외교로 나라에 손실을 입혔다는 공기업 사장들이 법원 1,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최근 전 세계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리튬의 가격은 빠르게 치솟고 있다. 올해만 해도 리튬 가격은 연초보다 30% 급등했다. 리튬 수요가 2021년까지 매년 35%씩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향후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조달난은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원외교는 한국에 힘겨운 싸움이다. 자원 개발 경험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면 실패 역시 미래의 성공을 위한 소중한 경험이자 자산이다. 하지만 단견에 빠진 한국은 담당자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데 바빠 쌓아놓은 경험과 네트워크는 팽개치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최근 만난 이명박 정부 시절의 고위 관료 출신은 에너지 정책과 자원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를 혼자 알고 있기는 아깝다며 반년에 걸쳐 책으로 정리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괜히 오해를 살까 출판을 망설이고 있다.

중국 경제성장의 밑바닥에는 좋든 싫든 정부가 추진한 정책이 계속될 것이란 민간 기업들의 확고한 믿음이 깔려 있다. 국민 세금으로 쌓은 경험과 지식, 인적 네트워크를 공유할 수 없고, 정권마다 정책이 바뀌는 나라에서는 과연 어떤 성장전략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정세진 산업부 기자 mint4a@donga.com
#바툴가 대통령#적폐 청산의 대상인 이명박 정부#자원외교#성장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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