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노지현]지금 전화 걸 사람이 있습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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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현 사회부 기자
노지현 사회부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카운티 교도소 공무원으로 일하는 심리분석가 최재동(미국명 제이 최·60) 씨는 재소자들의 자살 예방과 정신건강을 담당한다. 흉악한 범죄자도 종종 그를 찾는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멘털’이 무너진 건 수감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경범죄자다. 재판 진행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변호사와 통화하던 중 휴대전화를 부수거나 좌절감에 오열하는 사람도 많다.

평소 화를 많이 내던 재소자들이 평소와 달리 밝은 표정을 지을 때가 있다. 최 씨가 “엄마랑 전화했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가 한 말은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강해져라” “건강을 챙겨야지” “우린 널 기다린다” 정도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자식의 마음 한구석에는 튼튼한 기둥 하나가 세워졌다.

최 씨는 지난달 대구시교육청과 경북 청송군, 경일대 초청으로 학교 내 상담교사·공무원·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했다. 남을 돕는 일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건강은 돌보기 어려운 사회복지사, 학교폭력으로 자살 충동을 겪는 아이들을 만나는 상담교사, 끝없는 취업난에 지친 학생들…. 이들이 겪는 스트레스의 원인은 다르지만 실타래가 엉키면 누구라도 극단적인 상황에 이를 수 있다.

2003년부터 12년간 자살률 ‘부동의 1위’ 국가인 한국은 올해 간신히 리투아니아에 1위 자리를 넘겼다. 10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간한 ‘2017 한눈에 보는 보건(Health at a Glance)’에서 한국 자살률은 2013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28.7명으로 리투아니아(29.0명)보다 낮았다. 그래도 여전히 OECD 35개국 평균 12.1명의 2.4배 수준이다. 2015년 기준으로 각 국가가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1991∼2000년 자살률이 가장 높았던 국가군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웨덴이었다. 정책을 제대로 만들고 사회적 환경만 조성하면 자살률을 대폭 낮출 수 있다는 뜻이다. 한때 우리와 같이 심각한 자살률에 시달리던 일본의 경우 인구 10만 명당 17.6명 수준까지 낮아졌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후 매년 증가했다. OECD가 한국을 우려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72시간 응급정신과병동’은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 한국은 자살하려는 사람이 발견되면 만류하고 집에 보낸다. 그걸로 끝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위험군을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72시간 응급정신과로 보낸다. 경찰관이나 훈련받은 간호사, 교사들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일종의 명령권을 갖는다. 환자의 상태를 의료진이 보고 퇴원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자살 충동이 심하면 법원에 연장 신청을 낼 수도 있다. 마음이 부러진 환자를 잠시나마 보호해주는 것이다. 인권보다는 생명권이 더 우선이기 때문에 사회구성원들도 수긍한다. 자살 순간을 모면하게 해주면 이후에 자살 생각을 접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연구 결과로 입증됐다.

한강다리에 폐쇄회로(CC)TV를 달고, 다리 난간에 위로의 문구를 써 놓는 것도 중요하다. 그걸로 끝나면 안 된다. 1, 2위를 달리는 자살률을 낮춰 보자고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힘을 합쳐 범국민적 운동이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닐까. 한 해 교통사고 사망보다 자살이 3배나 많다는데, 세상이 무심하다.

노지현 사회부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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