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윤종]미래가 있으니 괜찮다?… ‘청년 빈곤’ 그대로 둘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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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이는 이번에도 안 왔네?”

“예, 그렇죠 뭐. 취직도 안 되고…. 공부할 것도 많다고 하고.”

설 연휴 가족친지 모임에서 취업을 앞둔 ‘청년 친척’을 못 본 이들이 많다. 그나마 모임에 온 취업준비생 조카를 보고 “올해는 꼭 취직하라”며 세뱃돈을 내밀어도 ‘눈치 없는’ 어른으로 타박을 받기 십상이다. 이쯤 되면 마음속 깊숙이에서 이런 생각도 올라온다.

“아니, 우리 때는 안 힘들었나. 옛날에는 더 가난하고 어려웠는데.” “힘들어도 청춘이라면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해야지. 요즘 애들은 약해….”

자칫 ‘꼰대’처럼 보이기 싫어 입 밖으로 내뱉진 않지만 이런 생각에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취재 과정에서 많은 청년을 만난 기자 역시 때론 “청년보다 실직한 40대, 명퇴한 50대가 더 힘든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해봤다. 그렇다면 여기, 스스로 ‘가난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취준생 최모 씨(27·여)를 어떻게 봐야 할까.

최 씨는 취업준비에 집중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부모님으로부터 용돈 50만 원을 받으며 생활한다. 도서관 식당에서 점심과 저녁 매끼를 5000원 이하로 해결한다. 돈을 아끼려고 커피믹스를 타서 마신다. 스타벅스 커피는 일주일에 딱 한 번 사 먹는다. 친구들도 한 달에 한 번만 만난다. 한 번만 만나도 식사비 등으로 2만 원은 족히 들어서다. 1개월 기준 인터넷 강의비 30만 원, 체력관리비(수영) 6만 원, 종합비타민제 2만5000원, 위장약 1만 원은 부모님으로부터 별도로 받는다.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풍족하진 않아도 큰 불편 없이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왜 최 씨는 ‘빈곤’을 강조할까? 청년 문제를 연구해 온 보건사회연구원 김문길 연구위원과 함께 ‘다차원 빈곤’ 개념으로 요즘 청년들의 상황을 풀어봤다.

우선 국내 청년빈곤율(9.0%)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3.9%보다 낮다. 노인빈곤율(48.8%)을 감안하면 ‘청년이 뭐가 힘드냐’는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이 청년빈곤율은 소득만으로 산정된 것이다. 동거가구원의 소득이 반영돼 계산된다. 부모와 함께 사는 비율이 85%에 달하는 국내 청년들의 빈곤율이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안으로 나온 ‘다차원적 빈곤’은 소득뿐만 아니라 최저주거기준, 의료비 부담, 취업, 근로지속가능성, 사회관계, 여가비 등을 두루 파악해 빈곤 정도를 조사한다. 김 연구위원이 세대별로 ‘다차원 빈곤율’을 분석해 보니 노인층은 2006년 22.7%에서 2015년 17.8%로 감소했다. 또 중장년층 역시 같은 기간 다차원 빈곤율이 16.4%에서 11.5%로 떨어졌다. 반면 청년층은 16.0%에서 18.4%로 다차원 빈곤율이 증가했다. 청년층의 다층적 빈곤율이 10년간 계속 높아져 노인과 비슷한 수준이 된 점은 눈여겨봐야 하는 대목이다.

이런 점에서 최 씨 역시 빈곤하다고 볼 수 있다. 청춘은 원래 배고프고,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 사회가 청년빈곤 문제를 지나치게 방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지난해 청년들이 많이 읽는 책 중에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있었다. 청년들의 마음속에는 현재 상황이 죽고 싶을 만큼 힘들지만 그 순간에도 작지만 실현가능한 행복은 누리고 싶다는 심리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 그간 청년정책은 ‘취업만 되면 다 해결된다’는 기조 아래 취업률을 높이는 것에 사실상 다걸기를 해왔다. 올해는 청년들의 취업지원 외에도 빈곤 청년 대책은 물론 교육, 건강지원, 주거지원 같은 다양한 청년복지정책이 함께 추진되기를 바란다.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zozo@donga.com
#청년 빈곤#취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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