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상호]이제 ‘연평도 포격전’으로 부르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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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7년 전 연평도를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던 북한의 포격도발일(23일)을 맞이하는 해병대원들의 심경은 많이 아쉽고 착잡하다.

그 속사정은 이렇다. 해병대는 2012년 9월부터 ‘연평도 포격도발’을 ‘연평도 포격전’이나 ‘연평도 전투’로 명칭을 바꾸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전력의 열세와 적의 기습이라는 최악의 조건에서도 사력을 다해 영토를 수호한 해병대원들의 응전이 제대로 평가받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북한이 선제도발을 했지만 사실상 아군이 승전을 거뒀다는 의미를 담겠다는 뜻도 있었다.

당시 해병대는 이런 의견을 상부에도 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방부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자칫 ‘도발’ 의미가 퇴색되면 국제형사재판소(ICC)의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기존 명칭을 사용하라는 의견이 내려왔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포격도발을 전쟁범죄로 ICC에 제소한 상황이었다.

상명하복의 군 조직에서 예하부대로서는 상부의 방침을 거스를 수 없었다. 이후 해병대는 내부 행사와 자체 기념시설에만 ‘연평도 포격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대외 자료나 공식 기념식에서는 ‘연평도 포격도발’이라는 명칭만 썼다.

2014년에 또 한 번의 계기가 찾아왔다. 그해 6월 북한의 비협조를 이유로 ICC가 연평도 포격도발을 전쟁범죄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해병대는 2015년 9월 상부에 명칭 변경을 공식 건의했다. 이에 대해 합동참모본부는 해병대원들의 즉각적인 대응 포격과 용감한 전투행위를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서 용어 변경에 찬성하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국방부가 또다시 제동을 걸었다. 군 내부에서만 ‘연평도 포격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방침을 고수한 것이다. 공식 용어는 ‘연평도 포격도발’로 굳어졌고, 7년째 바뀌지 않고 있다.

국방부는 해병대의 요청을 왜 번번이 거절했을까. 처음에는 북한군의 피해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명칭 변경이 초래할 비판과 역풍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하지만 해병대원들의 대응사격(K-9 자주포 80발)으로 북한군이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는 관측도 많다. 정보당국은 우리 군의 대응사격으로 북한군 10여 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측은 해병대원 2명이 전사하고, 민간인 2명이 희생됐다.

군 당국이 가장 규모가 작고 발언권이 약한 해병대를 홀대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연평도 포격전과 다른 교전 사례를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가 드러난다. 제1, 2연평해전과 대청해전에서는 수십 개의 훈장이 전사자와 참전 장병에게 수여됐지만 연평도 포격전은 전사자 2명만 훈장을 받았다. 사방에 퍼붓는 적 포탄의 불구덩이 속에서 불붙은 철모를 쓰고 결사 항전한 장병을 비롯해 해병대원 누구도 훈장을 받지 못했다.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해군총장 표창 등을 받은 게 전부다.

지난 7년간 군은 연평도 등 서북도서에 전력을 증강 배치하고, 진지를 요새화하는 등 만반의 대응태세를 확충했다고 말해왔다. 그에 못지않게 해병대원들의 ‘정신전력(사기)’을 높이는 작업도 중요하지 않을까. 적이 어떤 도발과 위협을 해도 조국을 목숨 걸고 지켜낼 ‘빨간 명찰’의 결기와 의지를 북돋아줘야 한다는 얘기다. 군 당국이 해병대의 요청을 수용해 명칭 변경을 적극 검토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연평도 포격전#국방부는 해병대의 요청을 왜 번번이 거절했을까#해병대원들의 정신전력 높여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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