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고기정]경제부총리, 그냥 있다 가는 자리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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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정 경제부장
고기정 경제부장
같은 부총리지만 사회부총리와 경제부총리는 급이 다르다. 전자는 2014년 세월호 사태로 급하게 만든 자리다. 유은혜 부총리가 4대째지만 교육부 장관과 어떻게 다른지 여전히 모호하다. 경제부총리는 1963년 박정희 정권 때 처음 도입됐다. 예산권을 기반으로 강력한 정책 조정 권한을 행사해 왔다. 김대중 정부 초기 3년과 이명박 정부 때 경제부총리제를 폐지해 봤지만 그때마다 ‘정책 컨트롤타워 부재’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타 부처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논란도 있었지만, 지금껏 이 자리가 없어지지 않은 건 순기능이 역기능보다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주에 홍남기 부총리가 취임 100일을 맞는다. 지금쯤이면 시중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때다. 그런데 기획재정부를 빼고는 홍 부총리를 거론하는 관료가 많지 않다. 이렇다 할 평가가 없다. 경제부총리의 존재감이 희미해진 건 1차적으로 청와대가 힘을 빼놓았기 때문이다. 정권 초기부터 끗발 센 정치인들을 장관으로 포진시켜 놓고, 청와대가 정책을 쥐락펴락했으니 경제부총리 입지가 좁아질 대로 좁아졌다.

실제로 현 정부가 부동산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대부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발표를 맡았다. 대책에 양도소득세 등 세제와 금융 분야가 망라돼 있었지만 경제부총리가 아닌 3선 의원 출신 장관이 전면에 나섰다. 반면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8·31 부동산대책 때 정부 측 주무는 김석동 당시 재정경제부 차관보였고 발표자는 한덕수 부총리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책의 메뉴는 별반 차이가 없음에도 사람이 바뀐 건 권력이 어디에 실려 있는지 보여준다.

그래도 전임 김동연 부총리는 청와대와 한판 붙어 보기라도 했다. 홍 부총리가 이달 초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를 검토하겠다고 했는데 9일 뒤 열린 당정협의에서 정반대 결론이 나온 건 참사나 다름없었다. 홍 부총리는 증권거래세를 낮춰 달라는 금융업계 요구에도 애초 반대했다가 여당이 압박하자 바로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본인이 추경 편성에 부정적 견해를 밝힌 지 이틀 뒤 대통령이 미세먼지 추경을 검토하라고 한 것을 보면 청와대와 일사불란하게 호흡을 맞추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경제부총리가 ‘정책 원톱’ 역할을 못 하면 장관들은 자기 부처에 함몰되거나 청와대만 바라보게 된다. 청와대 정책 기능이 형식적으로는 5년, 실질적으로는 2, 3년 작동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부총리의 역할 축소는 두고두고 경제에 부담이다.

상황이 개선될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공정거래위원장은 정권 3년 차인 지금도 해외에 나가 한국 대기업 흉이나 보고 다닌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참석자의 주머니에는 삼성 휴대전화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혁신성장의 한 축을 맡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는 ‘재벌 저격수’로 불리던 ‘의사당 운동권’ 같은 현역 의원이 내정됐다. 본인은 전문성 부족 지적에 “의원 생활 절반을 기재위에서 했다”고 반박했지만 국감장에서 국세와 지방세를 구별 못 해 피감기관마저 당혹해한 적도 있었다. 이들을 홍 부총리가 제어하기엔 역부족일 듯싶다.

역대 정부에서 내내 잘나가던 한 인사가 노무현 정부 때 장관을 하다 사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필자가 취재를 시작하자 “내가 그래도 이 정부 안에서 보수를 대변해 싸우는 사람이오. 그런데 나한테 이럴 수 있소”라고 했다. 이념을 물은 게 아니라 본분에 충실했는지 따졌는데, 이런 식으로 이념 코드를 내세웠다. 현재 여당 중진으로 있는 그가 그때나 지금이나 이념을 갖고 싸운 기억은 별로 없다. 홍 부총리가 성격이 무던해서 그렇지 이 인사처럼 자리에 집착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한다. 아직도 그 말을 믿고 싶다.

고기정 경제부장 koh@donga.com
#경제부총리#경기침체#정책 컨트롤타워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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