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문재인 대통령 다녀간뒤…울어버린 아이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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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수업 참관한 초등교, 소외계층 챙기기가 역효과 불러
인터넷에 엉뚱한 게시물…선의 왜곡돼고 아이들 상처

서울 양천구 A초등학교 학생들은 올해 5월 15일을 잊지 못한다. 스승의 날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5일 만에 학교를 직접 찾은 것이다. 대통령은 학교에서 태권도복 차림의 까까머리 남자아이를 만났다. 사인받을 공책을 찾겠다며 가방을 뒤적이느라 끙끙대는 아이 옆에서 대통령은 눈높이를 맞추며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쪼그려 앉은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특별한 스승의 날이 지난 뒤 A초교에 뜻하지 않은 시련이 찾아왔다. ‘대통령이 A초교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는 글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학교와 아이들이 난처한 상황에 빠진 것이다. 내용은 ‘A초교가 탈북학생과 임대주택에 사는 기초수급가정 자녀가 많이 다니는 학교’라는 것이다.



당초 대통령이 학교를 방문한 주목적은 미세먼지 대책 발표였다. 전국 1만1000개 초중고교에 미세먼지 측정기를 설치하는 것이다. A초교는 철도 차량기지 근처에 있다. 대기오염 우려 때문에 2년 전부터 미세먼지 대응 교육을 했다. 정책 발표 현장에 선정된 중요한 이유다.

여기까지는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선의의 이유’가 추가되면서 문제가 됐다. 이날 대통령 방문 후 “탈북학생과 기초수급가정 자녀 등 소외계층을 직접 살피겠다는 대통령의 뜻이 담겨 있다”라는 청와대 관계자 설명을 인용한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교육당국에 따르면 A초교에는 탈북자가정과 기초수급가정 학생이 적지 않다고 한다.

얼마 뒤 엉뚱한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너 나온 곳이 그렇게 안 좋은 학교냐” “임대주택 사는 애들이 다니는 학교다” “탈북자가 다니는 학교라 대통령이 갔다” 등 놀림과 비아냥거림이 인터넷 공간을 넘어 학생들을 향했다. 중학교에 다니는 졸업생마저 놀림감이 됐다. 학교에서 온 아이들은 울먹였다. “엄마, 친구들이 우리 학교가 불쌍한 곳이라 대통령이 왔대요.”

참다못한 학부모들이 학교에 항의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교사들은 대책회의를 열고 정정 보도와 게시글 삭제 등을 언론사와 포털에 요청했다. 그나마 여름방학을 맞아 상황은 일단 잠잠해졌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학교를 향한 부정적 시선이 낙인이 될까 걱정이 태산이다. 한 엄마는 “아이들이 인터넷을 하다 심한 내용의 댓글을 볼까 걱정스럽다”며 “대통령과 정책을 홍보하려던 행사가 오히려 아이들에게 상처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현장 방문은 국민의 시선을 끈다. 중요한 정부 정책을 알리는 데 효과적이다. 하지만 A초교처럼 예기치 않은 부작용에 힘들어하는 현장도 있다. 한 학부모는 “탈북했거나 임대주택에 산다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배려는커녕 약자를 비웃는 비뚤어진 문화가 선의를 왜곡하고 순수한 동심에 씻기 힘든 상처를 남긴 것 같아 씁쓸하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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