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임수]子正과 0시, 12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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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훨씬 넘었네. 도대체 잠은 안 오네.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닭이 울고 말았네.” 1980년 가수 이장희가 부른 노래에서처럼, 자정(子正)은 흔히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으로 여겨진다. 세월이 지나 래퍼 버벌진트도 “분명히 귀가시간은 자정이 훨씬 지난 후였지”라고 읊조렸다. 이런 통념을 반영하듯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자정을 “자시(子時)의 한가운데. 밤 열두 시를 이른다”고 풀이한다.

▷한데 끝은 곧 시작이기도 하다. 자정을 ‘밤 12시’가 아니라 하루의 시작점인 ‘0시’라고 표현하는 사전들도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시간을 가리키는 말에 오정(午正) 자정(子正)이 있는데 오정은 낮 12시, 자정은 0시 정각이다”라고 한다. 이쯤 되면 헷갈리는 사람들이 생긴다. 선생님이 과제를 ‘25일 자정’까지 제출하라고 했다면 24일에서 25일로 넘어가는 밤 12시(또는 0시)까지 내야 하는지, 25일에서 26일로 넘어가기 직전까지만 내면 되는 것인지.

▷일상적 용례로 보면 하루를 끝맺음한 후자가 맞는 것 같지만, 원칙적으로 25일 자정은 24일이 끝나고 25일을 시작하는 ‘25일 0시’가 정답이다. 이는 ‘24일 밤 12시’와도 같은 뜻이다. 이 같은 혼동이 없도록 언론 매체에서는 자정이라는 표현을 극히 삼간다. 어제 자 신문들이 25일부터 음주운전 단속기준과 처벌이 강화된다고 보도했는데, ‘25일 0시부터’라고 쓴 기사나 ‘24일 밤 12시부터’라고 한 곳이나 다들 맞다. 또는 ‘25일 자정부터’라고 해도 맞다.

▷하루를 밤과 낮 12시간씩 24시간으로, 1년을 12개월로 나눈 것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황도 12개 별자리 움직임을 따른 데서 유래한다. 동양 문화권에서도 하루를 ‘자축인묘… 술해’로 12등분하고 이를 다시 초(初), 정(正)으로 세분화해 자정(0시) 축초(1시) 축정(2시) 인초(3시)… 해정(22시) 자초(23시)로 24등분했다. 예부터 자정을 저문 날의 마지막이 아니라 새날의 첫 시간으로 삼은 것이다.

▷해가 뜨는 아침이 아니라 깜깜한 자정을 하루의 시작으로 본 것은 음양(陰陽) 사상에 따라 밤이 가장 깊었을 때 아침의 기운이 시작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신관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정화의식을 치를 때 새벽을 시작으로 삼았다. 반면 정통파 유대인들은 해가 진 오후 6시부터 하루를 시작하고 금요일 이 시간부터 안식일에 들어간다. 하루의 시작 설정은 종교, 문화적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결국 우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자정#0시#1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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