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美軍 유해 송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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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미군 치누크 헬기가 로켓포 공격을 받는다. 그때 네이비실 닐 로버츠 대원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그가 탈레반에게 쫓기다 처형되는 장면은 미 무인항공기에 의해 촬영됐다.

▷미군은 그의 시신을 되찾기 위해 또 다른 헬기를 보냈다. 이 헬기에 탑승한 6명의 대원이 적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죽은 군인을 위해 산 군인들이 희생된 셈이다. 굳이 왜 이렇게까지 위험이 따르는 임무를 내린 걸까. 당시 여단장은 “어떤 이유로든 우리는 미국인을 적진에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군 방침을 강조했다. 미국이 유해 송환에 얼마나 진지한 노력을 쏟아붓는지 알 수 있는 실화다. 2006년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뉴기니에서 수송기 추락 사고로 숨진 병사 3명의 유해가 조국으로 돌아왔다. 62년간 밀림을 집요하게 뒤진 끝에 얻은 성과다.

▷북한은 이를 파악한 듯 북-미 협상 시 유해 송환 카드를 유용하게 활용한다. 6·25전쟁 당시 북에서 미수습된 미군 실종자는 7700여 명, 이 중 5300여 명의 유해가 북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북-미 정상회담 당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트윗을 통해 이 회담의 최대 성과로 유해 송환 합의를 꼽았다. 하지만 북한은 12일 열릴 예정이던 유해 송환 실무협상에 불참하더니 회담의 격을 높이자고 역제안을 했다. 그 결과가 어제 판문점에서 성사된 북-미 장성급 회담. 주한미군은 유해 송환에 대비해 벌써 임시 나무관 100여 개를 갖다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6·25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전몰자 처리 방침이 달라졌다. 임시 묘지를 만들어 훗날 송환했던 방식에서, 38선 근처 곳곳에서 엎치락뒤치락 전세가 급변하자 가능한 한 빨리 본국으로 송환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 6·25전쟁에서 국군은 13만7800여 명이 전사하고 2만5000여 명이 실종됐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참전용사의 귀향을 책임지는 것, 국가의 신성한 의무이자 도리다. 70년이 다 돼 고국의 품에 안기려는 미군을 보면서 왜 미국이 강한 나라인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미군 유해 송환#북미 협상#6·25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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