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국 기자의 슬기로운 아빠생활]<11>키즈카페서 ‘강태공’으로 거듭난 사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0일 14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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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다. 아이와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하는 날이다. 과감한 도전을 해봤다. 혼자 아이(만 3세)를 데리고 키즈카페에 가보는 거야! 키즈카페라면 기자들이 무진장 취재를 했던 곳 아닌가. “키즈카페에서 부모들이 음주를?” “키즈카페 안전사고 주인은 나 몰라라” “키즈카페 위생 및 화재 위험 어쩔?” 등등의 주제로 많은 기자들이 그토록 지적한 그곳에 가보자. 인스턴트 음식이 몸에 안 좋은 건 알지만 그래도 먹으면 맛있는 이치랄까? 나는 기자이기 전에 아빠다.

키즈카페에 들어갔다. 여긴 어딘가? 싶겠지만 당황하지 말자. 돈만 있다면 들어가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돈을 내면 입장 허가를 내준다. 음료수(커피)를 무료로 한 잔 주는 곳도 있고, 아닌 곳(스포츠 카페 같은 곳)도 있다. 어차피 내가 낸 돈에 다 포함된 거니 마시자. “뜨거운 음료를 쏟으면 아이들이 다치거나 피해를 볼 수 있으니, 차가운 음료를 시켜야겠지”라는 스스로도 대견한 생각도 해봤다.

우리 애는 물 만난 물고기 마냥 카페 바닥에 내려놓기 전부터 “내려줘~ 내려줘” 몸부림을 친다. 땅에 발이 닿기 무섭게 각종 장난감과 놀이기구를 향해 돌진한다. “어~어~ 조심 조심” 다 필요 없다. 처음엔 아이가 혹시나 다칠까봐, 다른 아이들과 마찰이라도 일으킬까 노심초사 아이를 계속 바라봤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점차 나의 눈은 아이에서 벗어나 나의 휴대전화(게임 등)로 이동한다는 걸 감지하게 된다. 테이블을 잡고 앉는다. 덩치가 산만한 내가 아이들 노는 틈에 껴서 내 새끼 지켜볼 거라고 앉아 있는 것도 민폐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믿어보자. 아이를 풀어 놓는 것(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도 부모가 해야 할 교육 방법 중 하나일테니.

혼자 온 아빠들도 여럿 보인다. 아빠들은 역시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휴대전화로 뭐를 보거나 게임을 하고 있다. 나도 그랬다. 키즈카페에 갈 때면 항상 휴대전화 배터리를 가득 채운다. 애를 안보고 게임을 해? 엄마들이 들으면 기절초풍 할 테지만 아빠들은, 아니 남자들은 참 한결 같아서 좋다.

아빠들은 키즈카페에서 만난 모르는 아빠들과 합석하거나 이야기하는 일이 거의 없다. 혼자가 편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모르는 엄마랑 이야기 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있으려나?) 반면 엄마들은 간혹 초면인 엄마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아이가 동년배일 경우엔 특히 친밀도가 더 높아지나 보다. 아예 키즈카페에 함께 모여 가는 경우도 있어 보인다. 키즈카페에서 아이들을 놀게 해주려는 목적과 더불어 본인의 사회성을 키우기 위함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아빠들이 “어이 동상(또는 형님) 오늘 우리 아이들 데리고 키즈카페나 갈까?”라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본 적이 없다) 아, 그러고 보니 한번 나에게 말을 건 엄마가 있었다. “여기 저희 자린데요.”

간혹 카페 구석이나 테이블에서 잠을 청하는 아빠들도 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혼자 둬도 잘 노는 경우에 해당한다. 사실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책임 여하를 따지기 전에 나만 속상하다. 그러니 휴대전화 게임을 하면서도 아이를 항상 살피는 멀티테스킹 능력이 매우 필요한 곳이자, 그런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이 키즈카페다. 간혹 키즈카페에서 신나게 뛰어논 아이가 피곤한 탓에 일찍 잠자리에 드는 로또에 당첨될 수도 있다.

한 취재원은 키즈카페에 가서 ‘영웅’ 이 된 경험담을 털어 놓았다. 장난감 물고기를 낚싯대로 잡는 놀이가 있다. 물고기를 몇 마리 이상 잡으면 사탕을 주기도 한다. 한번은 다른 아이가 물고기를 잡지 못해서 울고 있길래 도움을 줬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동네방네 아이들이 다 달라붙어서 도와달라고 하더란다. “아저씨 최고!” 안 해 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날 잡은 물고기만 수백 마리, 호의를 베푼 덕분에 ‘강태공’으로 거듭나보는 기적을 맛 본 경우다.

키즈카페를 한두 번 가보니 “은근히 괜찮은 문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10회 이용권을 끊으면 할인을 해준다는 공지에 솔깃하기도 했다. 키즈카페에 다녀오면 간혹 감기엔 걸리기도 한다. 뭐, 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 아니겠는가? 세균이 걱정되면 무균실에서 키우던가. 키즈카페에 묻히고 왔을 우리 애의 바이러스가 미안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물티슈를 항상 들고 다닌다. 혹시나 우리 애가 재채기나 기침이라도 하면 물티슈로 주변을 닦아주는 센스를 발휘하는 슬기로운 아빠가 돼보자.

키즈카페 나오는데 아이가 “역시 아빠가 최고”라고 말한다. 피곤함이 사르르 녹았다. 아이가 말을 이어갔다 “아빠 내일 또 와요~” “…”

변종국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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