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육아]〈29〉부모란 존재가 ‘버거움’보단 ‘뿌듯함’이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9일 21시 00분


코멘트

“그 집 넷째도 이제 많이 컸죠?”

어버이날 아침, 우리 집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특별한 만남이 이뤄졌다. 네 아이를 둔 워킹맘 두 명의 만남이었다. 한 명은 나, 다른 한 명은 어린이집 학부모로 만난 한 어머니였다. 마침 연배도 비슷해서 진작부터 “한 번 꼭 보자”고 말을 주고받아 왔는데 해를 넘겨 이날에야 자리가 마련됐다.

다자녀 가정이야 찾아보면 어디나 있지만, 솔직히 네 자녀 이상은 잘 없다. 하물며 맞벌이까지 하는 집은 더 적다. 그래서 처음 이 어머니를 만났을 때 서로가 무척 신기했다. 더구나 나이까지 비슷하다니, 나도 주변에서 꽤나 젊은 엄마 축에 드는데 이래저래 희소가치가 큰 만남이었다.

사실 우리 아이들 어린이집(하난 졸업하고 둘은 다니고 있다)엔 다자녀 가정과 맞벌이 가정 자녀가 많은 편이다. 아마도 만3~5세(한국 나이 5~7세) 보육 기관으로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어린이집이기 때문일 것이다. 추첨을 통해 입소하는 유치원과 달리 어린이집은 지원순서와 우선순위 조건에 따라 입소가 결정된다. ‘맞벌이’ ‘다자녀’는 모두 가산점이 붙는 입소 조건이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우리 첫째가 다녔던 반만 해도 다자녀 가족 자녀가 서너 명은 됐다. 웬만해선 어디서 자녀수로 밀리지 않는 나조차 이곳에서는 ‘차석’이었다. 첫째와 같은 반이었던 친구 중에 형제자매가 다섯인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워킹맘 중에 최다 자녀를 가진 건 아마도 나와 그 어머니였을 것이다. 사정을 알고부터 그 집 첫째 아이를 유심히 지켜보니 참 의젓하고 씩씩했다. 역시 다자녀 맞벌이 가정 맏이답달까. 이 아이도 우리 첫째와 함께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종종 픽업을 하러 갔다가 마주치면 돌봄교실로, 도서관으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의연히 잘 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 번은 교문을 혼자 나서는 그 집 아이와 마주친 일이 있다. 우리 집 첫째 방과후학교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는데, 내게 꾸벅 인사하고 지나가기에 “○○야, 어디 가니? 아줌마랑 같은 방향인 거 같은데 △△ 나오면 함께 걸어갈까?” 하고 물었다. 아이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 언제 나와요?” 했다. 한 10분 뒤일 거라고 답하자 “음, 아니에요, 저 먼저 갈게요” 하고 답했다. ‘학원 차가 20분 뒤 인근 아파트 단지 앞 정문으로 오는데 엄마가 전후로 10분 정도 오차가 있을 수 있으니 늘 미리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아이는 돌아서면서도 내게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한지 곧장 아이어머니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었다.

8일 어머니와 두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눠보니 아이의 그런 의젓한 모습이 이해됐다. 어머니도 참 생각이 바르고 단단한 분이었다. 아이들 각자 해야 할 일과 지켜야 할 것들은 엄격히 가르치되 일단 아이 손에 넘어간 것은 믿고 맡기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아이 하나하나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배려하는 세심함이 느껴졌다. 엄마가 항상 곁에 없어도 아이가 든든하게 느끼고 씩씩하게 행동할 만했다.

재미있었던 것은 나와 그 어머니, 두 네 자녀 엄마 사이에 의외의 공통점들이 있었던 점이다. 나는 첫째부터 지금까지 천 기저귀를 쓰고 있는데, 그 집도 천 기저귀를 썼다고 한다. 요새 다자녀 집은 물론이고 아이 하나인 집도 천 기저귀를 쓰는 집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일회용 기저귀보다 아무래도 번거롭기 때문이다. ‘출산 전 잔뜩 사놓았는데 막상 낳고 보니 도저히 쓸 엄두가 안 나서 다 처분했다’는 엄마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천 기저귀를 쓴다고 하면 다들 마치 전근대시대 어머니라도 본양 식겁한다.
이미지 기자가 직접 사용한 천 기저귀.
이미지 기자가 직접 사용한 천 기저귀.

한데 막상 써보면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아이가 변을 본 기저귀를 모아 물에 담가두었다가(대변 기저귀는 대변을 털고 물로 씻어낸 뒤 담가놓는다) 세탁에 앞서 한 번만 물에 헹군 뒤 세탁기에 넣고 돌리면 끝이다. 그렇게 하루 한 번씩만 빨래하면 매일 쓰레기통을 가득 채우는 일회용 기저귀 쓰레기를 확 줄일 수 있다. 그 어머니도 세탁기를 이용해 비교적 손쉽게 천 기저귀를 썼다고 한다.

아이들 모두에게 모유 수유를 한 것도 똑같았다. 사실 아이를 여럿 키우며 수유를 병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일정한 수유 시간을 맞추기 쉽지 않고 피로 때문에 모유량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 모유 수유를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난 남들이 말하는 시간 간격에 구애받지 않고 틈나는 대로 수유했다. 수유하는 동안에도 좀 쉴 수 있도록 누워서 젖을 물리기도 하고, 들쭉날쭉한 모유량에도 너무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그 덕에 아이들 모두 6개월 이상 모유 수유를 지속할 수 있었다. 그 어머니도 모유 수유에 대한 ‘강박’이 없었기에 되레 더 편하게 모유 수유를 할 수 있었던 듯했다.
의회에 나와 모유 수유를 하는 라리사 워터스 호주 연방 상원의원. 아사히신문 제공
의회에 나와 모유 수유를 하는 라리사 워터스 호주 연방 상원의원. 아사히신문 제공

물론 어떻게든 모유 수유를 하는 게 옳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하고 싶은데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그만’둔다고 하는 산모들이 많기에 나와 같은 그 어머니의 마음가짐이 반가웠다. 그 어머니는 마치 내 생각을 읽은 듯 “막상 해보면 생각했던 것보단 어렵지 않은데 다들 너무 힘들게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했다.

어찌 보면 그 말은 모든 육아에 적용되는 게 아닐까. 요새 미혼남녀들을 만나면 모두 결혼이 무섭고 육아는 더 무섭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나 미디어에서 나오는 정보에 육아에 대한 비관적인 소식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힘들다’ ‘어렵다’ ‘지친다’ ‘내 삶이 없다’ ‘또 낳는 건 엄두가 안 난다’ 등. 그걸 긍정적으로 헤쳐 나가고 가급적 쉽게 풀어가는 노하우,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는 찾기 어렵다.

힘든 걸 공감해주는 것도 어느 정도가 있지, 모두 ‘힘들지?’ ‘힘들겠다’만 하니까 더 기운이 빠진다. 비판만 하긴 쉽다고, 왜 ‘이렇게 해보니 괜찮았어요’ ‘할 만해요’ ‘할 수 있어요, 힘내세요’와 같은 말은 들리지 않을까. 우리에게 더 필요한 이야긴 사실 그런 건데.

사회적 기반과 시스템도 그것대로 개선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육아에 임하는 부모의 ‘유리멘탈’을 조금은 단단히 만들어줄 수 있는 조언, 격려도 많아지면 좋겠다. 휴직 전 나와 같이 네 아이를 키우는 보건복지부 여자 과장님을 만난 적이 있다. 40대 중후반일 그 과장님이 그때까지 일을 놓지 않고 병행하시는 모습, 매일 아이들과 어떻게 지내고 휴일엔 어딜 놀러 간다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만으로도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아이 친구 어머니와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친정과 시댁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네 아이를 키워야 하는 빠듯한 현실에서 탄력근무제와 부부간 육아 분담을 통해 공백을 메우고, “여자는 역시…”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아이와의 시간을 조율해가며 일도 놓지 않는 당찬 모습이 내게 큰 여운을 남겼다.

부모란 말이 ‘뿌듯함’보다는 ‘버거움’으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마침 어버이날 있었던 특별한 만남 덕에 부모의 책임감과 역할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올해 어버이날에도 난 세 송이의 카네이션을 달았다(내년엔 막내까지 어린이집에 가니까 네 송이가 달리겠다). 카네이션 세 송이의 무게는 묵직했지만 덕분에 옷은 예쁜 ‘꽃밭’이 됐다. 부모란 존재도 육아도 모두 그런 양면성이 있을 테다.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육아가 힘들지만 가급적 ‘할만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려 한다. “그냥 부딪혀보면 돼.” “다 힘들어도 했어.” 이런 ‘꼰대의 훈수’ 같은 게 아니다. 그저 힘들다고 지레 겁먹지 않게끔, 자꾸만 더 위축되지 않게끔 북돋워 주려는 것이다. 힘들다는 이야기는 너무 많으니까. 나도 다른 엄마들을 보면서 그랬듯 누군가 나를 보면서 용기를 얻기도 했으면 좋겠다. 나는 누가 말하듯 ‘슈퍼 맘’도 ‘슈퍼 우먼’도 아니고 그저 평범하고 눈물도 많은 워킹맘이다. 때론 실수도 하고 엎어지지만 즐겁게 네 아이를 키우려는 내 모습이 또 누군가에겐 힘이 되기를 바라본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