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육아]<23>나에게 당연한 것과 남편에게 당연한 것…누구에게나 공평한 육아의 무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8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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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 인턴
김희원 인턴
일을 쉬는 평일, 잠시 병원에 다녀오기로 한 남편이 한 시간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했더니 “아, 나 오늘부터 친구랑 매주 만나 공부하기로 해서 옆 동네 왔는데” 한다. 그러고 보니 신랑 일정표에 ‘○○○ 오전 10시’라고 써있었다.

“공부를 한다고? 매주?” “응.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럼 점심도 먹고 와?” “그건 봐서.” 그렇게 답했지만, 친구와 오전 10시에 만나 공부를 한 남편이 식사도 하지 않고 돌아올 리 만무했다. 한숨이 나왔다. 일주일에 이틀 쉬는데 그 중 하루 3시간여, 반나절을 매번 나가서 친구와 보내겠다니. 왜 이제야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그리고 왜 그런 걸 나와 한 마디 상의 없이 결정하는 건지.

요즘 송년회다, 지인 상(喪)이다, 뭐다 해서 안 그래도 툭하면 밤늦게 귀가하고 있는 남편이었다. 그 주만 해도 사흘 내리 늦거나 일이 있어 나 혼자 아이들을 돌봤다. 전날은 학교 동창 모임, 그 전날은 오후 10시까지 근무, 또 그 전날은 몸이 아프다며 집에 오자마자 아이들만 씻겨놓고 잠이 들었다. 오늘 하루쯤은 아기를 같이 돌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새벽에도 칭얼대는 막내를 혼자 달래느라 잠을 설친 탓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물론 남편이 항상 이런 것은 아니다. 남편은 평소 육아도 많이 하고 아이들도 굉장히 잘 돌보는 좋은 아빠다. 거의 매일 아이 넷 목욕도 도맡아 하고 휴일 아침에는 늦게까지 늦잠 자는 나를 위해 아이들 밥을 챙겨 먹이기도 한다. 아이들은 엄마보다 살가운 아빠를 더 따른다. 친정 엄마도 “○서방 같은 아빠 없다”며 엄지를 추켜세우실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육아에 대한 인식 차이는 느껴진다. 책임의식의 차이랄까. 예를 들어 앞선 상황에서 나라면 일단 약속을 잡기에 앞서 당연히 신랑에게 의사를 물었을 것이다. ‘친구와 매주 만나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하루 반나절만 아이를 혼자 볼 수 있겠느냐’고. 아니, 애초에 공부 같은 것은 시작할 생각도 안했겠지. 회사에 다닐 때도 분기별로 돌아오는 팀 회식이나 아주 중요한 취재원 약속 같이 매우 불가피한 일을 제외하고 개인적인 일정을 잡아본 일이 없다.

연말연시 모임도 그렇다. 나라면 아마 대부분 참석하지 못했을 터다. 12월 들어 휴직 중인 나에게도 대학 동문, 회사 동기, 팀으로부터 송년회 참석 여부를 묻는 연락이 닿았다. 하지만 모두 갈 수 없다고 고사했다. 따져볼 것도 없이 아이들 때문이다. 남편에게 ‘나 대학 동아리 모임에 다녀올 테니 아이들 넷 좀 봐줄 수 있어?’ 같은 질문은 언감생심 해볼 생각조차 못했다.
반면 남편은 대학 동아리, 동창 모임, 직원 회식 거의 모두 참석했다. 그런 모임들은 ‘웬만해서는 가지 못한다’고 전제하는 나와 달리 ‘웬만하면 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단 일정표에 적어놓고 “이날 모임 있어. 장모님 계시지?” 하고 물었다. 한 동창 모임에 다녀와서는 “한 친구가 자신에게 ‘아이 넷인데도 동창회에 나오다니 용감한 남편’이라고 했다”며 멋쩍어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그때뿐, 모임은 모임대로 이어졌다.

지난 주말엔 편도만 4시간 걸리는 지방의 친구 결혼식까지 가겠다고 나섰다. 나는 고작 40분 거리의 회사동기 결혼식도 참석하지 못하는데…. 갓난쟁이 시절부터 알고 지낸 오랜 친구의 결혼식도 지방이란 이유로 축하문자만 날려야 했다. 그 친구는 참석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내 문자에 대수롭지 않은 듯 답했다. ‘아기 엄마니까 못 오는 게 당연하지, 괜찮아!’ 그래, 아기 엄마에겐 당연한 이 통상적인 일들이 왜 아기 아빠에겐 당연하지 않은 걸까.

어느 날인가 아이들 프로그램을 찾아 채널을 돌리다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한 정부의 공익광고를 보게 됐다. 퇴근이 빨라진 덕에 여자는 아이를 유치원에서 직접 데려올 수 있고, 남자는 취미생활을 즐기게 됐다는 식의 장면이 이어졌다. 심사가 뒤틀렸다. 아니, 왜 이른 퇴근으로 생긴 여유시간에 남자는 취미생활을 즐기는 반면 여자는 그저 아이를 찾으며 행복해 해야 한다는 말인가. 엄마도 드럼 치고 동아리 모임 좀 나가고 친구 결혼식에도 다녀오면 안 되나?
결국 지난 주말 남편에게 한 마디를 날렸다. “이대로는 너무 힘들다. 늦을 거면 아가씨(시누이)라도 불러 달라.” 멀지 않은 거리에 살지만 평일 늦게까지 일하는 시누이였다. 그 사정을 나라고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다음 주 남편 일정표에는 또 저녁 모임이 2건이나 적혀있었다. 또 아이들을 혼자 봐야 한다니 버거운 것도 버거운 것이지만 나 혼자 모든 것을 떠맡아야 하는 현실이, 그게 당연한 듯 온갖 약속이 적혀있는 남편의 일정표가 밉고 화가 나 시위를 하고 싶었다.

남편은 두 일정 중 하나는 가지 않아도 된다며 다른 하나만 참석하겠다고 했다. 일과 관련한 남편 일정까지 막을 순 없어서 그 정도로 타협을 봤다. 친정엄마께서는 “남자가 당연히 그런 모임도 나가고 사람도 만나야지” 하며 오히려 나를 나무라셨다. 맞는 말씀이었다. 특히 남편 일은 그 성격상 동기·동창 모임에서 듣는 정보가 적잖았다. 다만 남편의 ‘당연히’와 나의 ‘당연히’ 사이가 한없이 멀다는 게 씁쓸했다.

또 한 주가 시작되고 출근한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다. ‘올해 크리스마스, 쉬려고 했는데 일해야 할 것 같아.’ 어찌됐거나 현실은 아빠든 엄마든 여유시간을 즐기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생각해보면 남편에게 (육아에 대한) 책임의식 같은 것을 함양할 시간이 있었는가 싶다. 육아휴직이라도 해본 나와 달리 자영업자인 남편은 그럴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내년, 내후년 연말엔 상황이 좀 달라져 있을까?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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