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육아]<21>‘햄스터냐’ 7남매 가정에 쏟아진 막말…다자녀 엄마도 행복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1일 15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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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같이 산다는 소리를 길게도 써놨네.’

한 포탈사이트 게시판 다자녀 가족의 글에 달린 댓글이다. 넉넉지 않은 벌이에도 세 자녀를 포함한 다섯 식구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훈훈한 글이었지만 댓글은 훈훈하지 않았다. ‘애들은 돈으로 키우는 게 아니고 사랑으로 키우는 거라고들 말하는데, 사랑은 기본이고 거기에 돈이 얹어지는 거다.’ ‘비행기는 타봤나, 제주도는 가봤나.’ ‘애들이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등의 댓글이 많았다.

비단 이 글만 유별난 것이 아니다. 다자녀 관련한 글이나 기사를 보면 이런 류의 댓글을 쉽게, 또 많이 찾을 수 있다. 올 여름 7남매를 키우는 한 다자녀 가족은 자신들의 기사에 달린 악성 댓글을 참다못해 일부 누리꾼을 고소하기까지 했다. 댓글 내용은 대부분 기사와 관계없는 원색적인 비난이었다. ‘짐승이다’ ‘햄스터냐’ ‘애들이 불쌍하다’ 등.

이미지 기자의 네 아이들
이미지 기자의 네 아이들
“난 하나 키우기도 버거운데 넌 어떻게 넷이나 키워?” 어쩌면 내가 자주 듣는 이런 말에도 ‘하나도 잘 키우기 힘든데 넷이나 낳아 잘 키울 수 있겠느냐’는 뜻이 담겨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조차 우리 가족을 보면 “부모가 힘들겠다”며 혀를 끌끌 차시니 말이다. 본인 역시 다자녀 부모셨을 텐데….

다자녀인 게 그렇게 힘들고 옹색해 보이는 걸까? 하긴 육아는 물론이고 결혼도 힘들다고 기피하는 상황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인터넷, 서점에는 독박육아니, 워킹맘 제2의 출근이니, 육아우울증 같은 ‘힘든 육아’ 이야기가 넘쳐난다.

비관적인 기사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사회조사’에서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응답이 조사 이래 처음으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결혼적령기인 20~30대의 경우 응답자 중 ‘결혼을 해야 한다’고 답한 이는 3명 중 1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나 역시 이런 기사들을 여러번 써왔던지라 그리 놀라운 결과는 아니지만, 새삼 나와 내 가족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확실히 육아는 힘들다. 다자녀 육아는 더 힘들다. ‘거지 같이’ 사는 수준은 아니지만 아이들 하나하나 넉넉하게 해주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뭘 하든 남들 보다 2~4배의 돈이 들기 때문에 먹을 거 하나 살 때도 가격표부터 보게 된다.

하지만 다자녀 부모가 된 것을 후회해본 적은 없다. 후회는커녕 평소 서로 돕고 의지하는 애들을 보면 오히려 언감생심 형제를 힘닿는 데까지 더 만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첫째가 동생들 외투를 찾아오고 둘째가 셋째 양말을 신겨주는 모습은 이제 우리 집에서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언젠가 키즈카페에서 셋째가 울면서 엄마를 찾아서 직원이 “아이 보호자를 찾습니다”고 방송을 했는데, 언니들이 가서 “저희가 보호자예요”하며 동생을 찾아온 일도 있다(내가 잠시 나간 새 벌어진 일인데 나중에 직원이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 셋째도 이제는 동생이 생겼다고 제법 큰 척을 한다. 아기가 울면 “토했나봐. 내가 가서 볼게”하고 가제수건을 챙겨오고 울지 말라고 ‘까꿍’하며 어르기도 한다.

저희들끼리 잘 어울려 노는 모습은 또 얼마나 예쁜지. 사춘기 아이들은 말똥만 굴러가도 웃는다고 했던가. 영·유아들은 수고스럽게 말똥 굴릴 필요도 없이 “똥” 한마디만 해도 배를 잡고 뒤집어진다. 뭐가 그리들 좋은지 한참 깔깔대다 지치면 “내 엉덩이 봐라”하며 서로 엉덩이를 까보이곤 웃고, “발 냄새도 맡아봐” 하더니 또 한참을 웃는다. 지저분한 유머는 딱 질색인 나조차 이런 아이들을 보면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덕에 힘들지언정 구질구질하고 ‘거지 같이’ 산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아마 대부분의 다자녀 부모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한데 요새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육아가 힘들고 아이는 버겁다는 이야기밖에 없어 안타깝다. 하나 키우기도 어렵다는 이야기들 천지인데 다자녀 가구는 오죽 답답하고 부담스러워 보였을까. 하지만 막상 키워 보면 자녀가 여럿이라 상쇄되는 일도 있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주는 기쁨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물론 육아를 어렵게끔 하는 여러 불합리한 현실들이 존재한다. 본인의 신념에 따라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DINK·결혼 후 의도적으로 자녀 없이 생활하는 맞벌이 부부)족도 있다. 그런 것들을 다 무시하고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육아를 너무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육아 포비아’는 없었으면 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잃는 것도 있지만 얻는 것도 있다.

엄마가 애를 평생 낳을 것처럼 보였는지 아이들은 종종 “엄마, 다음 동생은 언제 나와?” 하고 묻는다. “이제 없어”하면 금세 실망스러운 얼굴로 “왜?”라고 말한다. 엄마의 사랑이 분산되는 것이 영 미안했는데 그래도 아이들은 형제가 많은 게 싫지 않은가 보다. 더 만들어주긴 어렵겠지만 지금까지 만들어준 형제들만으로도 난 아이들에게 큰 선물을 했다고 믿는다. 내 인생에도 가장 큰 선물임은 물론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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