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이젠 글렀다’는 절망의 순간… 탄광지역 DNA가 꿈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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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후쿠시마 복구의 상징 ‘스파리조트 하와이안스’

1960년대 탄광폐광 ‘첫번째 위기’
광부의 딸들이 훌라걸로 직접나서 ‘일본속 하와이’ 테마파크로 변신

2011년 동일본대지진 ‘두번째 위기’
이번에도 훌라걸들이 복구 앞장… 전국 순회공연, 리조트 건재 알려

‘우린 모두 한가족’ 정신 지켜
204일 장기휴업에도 직원해고 ‘0’… 재개장하며 파트타임도 전원 복직

지역이 위기에 부닥칠 때 마다 훌라걸들이 나섰다. 1966년 폐광촌에 온천리조트가 세워질 때 광부의 딸들이 훌라걸로 나섰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터지자 전국 순회공연을 통해 지역의 건재를 알렸다. 위쪽 사진은 2017년 7월의 훌라걸 무대. 어린이 관객들을 무대로 불러들여 훌라춤을 가르치고 있다. 아래쪽은 50여년 전 마을의 미래를 위해 필사적으로 훌라춤을 연습하는 광부의 딸들. 이와키(후쿠시마)=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스파리조트 하와이안스 제공
지역이 위기에 부닥칠 때 마다 훌라걸들이 나섰다. 1966년 폐광촌에 온천리조트가 세워질 때 광부의 딸들이 훌라걸로 나섰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터지자 전국 순회공연을 통해 지역의 건재를 알렸다. 위쪽 사진은 2017년 7월의 훌라걸 무대. 어린이 관객들을 무대로 불러들여 훌라춤을 가르치고 있다. 아래쪽은 50여년 전 마을의 미래를 위해 필사적으로 훌라춤을 연습하는 광부의 딸들. 이와키(후쿠시마)=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스파리조트 하와이안스 제공
“이젠 글렀다”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좌절의 순간. 일본 후쿠시마(福島)현 이와키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광산업 위기가 찾아온 1960년대에는 온천리조트 건설을 통해 마을 전체의 주력 산업을 하루아침에 ‘탄광’에서 ‘관광’으로 바꿔 살아남았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그 관광업조차 흔들렸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200일 넘는 리조트 휴관 끝에 부활을 이뤄내 후쿠시마 복구의 상징이 됐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6주년 취재차 방문한 현지는 여전히 사고 후유증에 시름하고 있었다. 방사능 관련 평판 피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농수산물의 잔류 방사선량을 일일이 검사하는 등의 노력이 이어졌지만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런데 한곳만은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이와키의 ‘스파리조트 하와이안스’는 사고원전에서 불과 50km 거리인데도 원전과 무관한 별천지 같았다. 맨발에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남녀노소 관광객들이 넘쳐났고, 이들은 훌라걸들의 공연을 보면서 웃고 박수 쳤다.

이와키에서 목격한 ‘별세계’는 한 기업(조반·常磐탄광·후에 조반흥업)과 지역민이 하나가 돼 운명을 개척한 결과임을 6월 8일, 7월 8일 두 번에 걸친 현장 방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바탕에는 ‘일산일가(一山一家·한 탄광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가족)’라는 탄광지역 특유의 DNA가 있었다. 일본 사회도 ‘스스로 노력하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2017년 7월: 아이들로 넘쳐나는 리조트

훌라걸들의 공연은 하루 두 차례 1시간씩 있다. 8일 오후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관객들.
훌라걸들의 공연은 하루 두 차례 1시간씩 있다. 8일 오후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관객들.
토요일인 8일 오전 9시 반경 도쿄역 인근 버스주차장.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스파리조트 하와이안스로 향하는 무료 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1인당 왕복 1만2000엔이 넘는 교통비를 절감할 수 있어 인기란다. 도쿄 요코하마 등 수도권에서 매일 아침 12대의 버스가 숙박객 500여 명을 싣고 리조트로 향한다.

세 살, 다섯 살인 두 아이를 데리고 버스를 탄 젊은 부부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방사능이 불안하지 않으냐고. “사고 초기에는 꺼렸지만 지금은 안전하다는 말을 믿는다. 문제가 있다면 이 많은 사람들이 가겠느냐”는 답이 돌아온다.

버스는 오전 10시 정각에 출발해 2시간 반 만에 리조트에 도착했다. 28만 m²(약 8만5000평) 부지에 20개의 온수풀과 온천, 약 500실의 호텔….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대 노천탕도 이곳에 있다.

구니이 히데후미(國井秀文·49) 영업기획그룹 담당자는 요즘 하루 방문객은 평일 4000여 명, 주말엔 1만 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2012년 재개장 후 2년 만에 연간 방문객 14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초기에는 피해지역을 돕기 위해 찾아오는 단체 손님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본래 핵심 고객인 수도권, 가족 단위 손님들이 완전히 돌아왔습니다.”

지진 후 가장 힘든 문제는 방사능 피해에 대한 우려였다. 리조트 측은 재개장 직후부터 관내 10개 지역에서 매일 측정한 방사선량 수치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하지만 이 일을 2년 전부터 그만뒀다.

“수치가 변동이 없었거든요. 그 대신 후쿠시마현에서 측정하는 수치를 확인해 달라고 안내합니다.”

현재도 후쿠시마현은 628대의 모니터링 포스트, 3099대의 리얼타임 선량계를 가동해 매일 방사선량 측정치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다. 통계를 찾아보니 리조트 주변은 최근 4년간 시간당 0.08∼0.1μSv(마이크로시버트) 사이를 오르내렸다. 시간당 0.1μSv는 도쿄나 서울의 방사선량 수치와 비슷한 수준이다.

“기계가 나타내는 수치와 상관없이 혹시 모르는 문제는 없겠느냐”는 질문을 던졌지만 구니이 씨는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이곳에 오지 않는다. 오는 분들은 믿으니까 오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첫 번째 위기: 폐광―마을이 사라진다

공연무대 바로 옆 대형 온수풀에서 휴일 오후를 즐기는 방문객들. 리조트는 일본에서 최초로 워터 슬라이드, 흐르는 실내 풀을 도입하는 등 업데이트를 계속했다. 1990년에는 ‘조반 하와이안센터’에서 스파리조트 하와이안스로 이름을 바꿨다. 이와키(후쿠시마)=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공연무대 바로 옆 대형 온수풀에서 휴일 오후를 즐기는 방문객들. 리조트는 일본에서 최초로 워터 슬라이드, 흐르는 실내 풀을 도입하는 등 업데이트를 계속했다. 1990년에는 ‘조반 하와이안센터’에서 스파리조트 하와이안스로 이름을 바꿨다. 이와키(후쿠시마)=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본래 이곳은 혼슈(本州) 최대의 탄광촌이었다. 1884년부터, 한창 때는 7000명의 광부와 가족 및 관계자 7만 명이 사택단지에서 살며 석탄을 캤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부터 석탄에서 석유로 에너지 혁명이 일어나면서 폐광 위기가 닥쳤다. 온 마을이 먹고살 거리가 없어질 위기에 탄광 경영진은 엉뚱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키워드는 ‘하와이’였다.

마을에 풍부한 온천수를 활용해 ‘하와이’를 주제로 한 ‘오락시설’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본래 ‘검은 다이아몬드’라 불리던 석탄 1t을 캐내기 위해 온천수 40t을 퍼내 버려야만 할 정도로 온천수가 풍부한 지역이었다. 탄광 경영진은 이 온천수와 지열을 이용해 1년 365일 섭씨 28도가 유지되고, 야자수와 바나나가 자라는 ‘일본 속 하와이’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리조트 종업원은 전직 광부와 가족들, 쇼무대에 오르는 훌라걸은 광부의 딸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많은 광부들이 “말도 안 되는 발상”이라며 새로 조성된 수도권 공업단지로 떠나갔다. 하지만 몇몇 광부의 딸들은 가족과 마을의 미래를 걱정하며 절박하게 춤을 배웠다. 이 과정은 2007년 한국에서도 개봉된 영화 ‘훌라걸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재일동포 3세 이상일 감독이 제작한 훌라걸스는 2007년 일본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을 석권했다.

인원 감축에 저항하던 광부들도 점차 이 새로운 꿈에 편승했다. 집에 있는 난로를 들고 와 야자수 기르는 데 온기를 보탰고 점퍼를 벗어 야자수를 덮어주는 이들도 있었다. 지금도 리조트 직원 중엔 광부의 아들, 손자가 적지 않다. 이들은 영화 속 그 장면을 보면서 “저 야자수 덮어주는 사람이 ○○의 아버지야”라고 말들을 한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일본 최초의 테마 리조트 ‘조반 하와이안 센터’다. 1966년 1월 문을 열자 첫해에만 120만 명이 몰려와 삭막했던 탄광촌의 변신을 확인했다.

#두 번째 위기: 3·11 동일본 대지진과 4·11 여진―“이제는 글렀다”

3월 초의 후쿠시마는 춥다. 2011년 3월 11일은 눈발까지 날렸다. 지진이 거의 없던 이와키를 엄습한 동일본 대지진에 수영장에서 놀던 사람들은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당시 관내에 있던 방문객이 2500여 명, 종업원은 300여 명이었다.

자력으로 갈 수 있는 사람들은 각자 떠났지만 무료 버스로 온 630명의 귀환은 리조트 측 책임이었다. 도로가 끊기고 원전은 폭발하고 휴대전화조차 잘 터지지 않는 뒤숭숭한 상황. 사원들이 조를 나눠 귀환루트 찾기에 나섰다. 결국 사고 발생 이틀 뒤인 13일 630명 전원을 버스 18대로 도쿄역에 무사히 내려줄 수 있었다. 이후 리조트는 무기 휴업에 들어갔다.

4월 11, 12일 3차례에 걸쳐 진도 6약의 직하형 여진이 이와키를 엄습했다. 한 달 전 본진보다 이 지진의 피해가 컸다. 신축 중이던 호텔 건물이 무너졌고 훌라걸 공연무대도, 수영장도 뒤틀리고 깨졌다. 여기에 방사능 관련 악소문이 급속히 확산됐다. 지진 직후 이와키 번호를 단 차로 도쿄에 출장 간 사원이 호텔에서 주차를 거부당했을 정도였다.

이번에도 훌라걸들이 복구의 밑거름 역할을 했다. 리조트 측은 5월부터 훌라걸을 전국 순회공연에 보내 피난민을 위로하고 후쿠시마의 건재를 알렸다. 1년간 전국 125개 지역에서 247회 공연했다. 지진으로 가족과 집을 잃고 학교 체육관이나 마을회관에서 생활하던 피난민들에게 훌라걸들의 미소는 큰 위로가 됐다.

예나 지금이나 훌라걸이 된다는 것은 2년제 전문학교인 조반음악무용학교 학생이 되는 동시에 월급 받는 정사원이 된다는 뜻이다. 훌라걸 팀에 들어가는 연간 소요 비용은 4억 엔. 한때 하와이에서 무용수들을 초빙하면 연간 1억 엔이면 된다는 검토가 이뤄졌으나 경영진은 “우리 사람은 우리가 키운다”는 고집으로 운영을 이어갔다. 이들은 동일본 대지진 뒤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하와이 무용수들이라면 지진 직후 다 귀국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전국을 도는 순회공연을 해줬습니다.”

리조트 측은 204일간의 장기휴업에도 광산촌 시절부터 내려오던 ‘우리는 모두 한가족’이라는 정신을 버리지 않았다. 직원 300여 명 중 단 한 명도 해고되지 않았고 파트타임 근로자 800명은 재개장과 함께 전원 다시 채용됐다.

이와키시에서는 전체 취업자의 21.4%인 3만3000여 명이 관광업에 종사한다. 좀 오래된 통계지만 2006년 미즈호종합연구소는 이 리조트가 직간접으로 연간 1만 명 가까운 고용을 창출한다고 추산했다. 이런 존재감 덕이었을까. 당시 일본 관광청은 “하와이안스 수복이야말로 동일본 대지진 복구의 상징”이라며 힘을 실어줬다. 지진 피해 복구에 필요했던 100억 엔도 지역민의 탄원과 은행의 협조로 무사히 빌릴 수 있었다.

함께 살아간다는 마음, 지역을 살려내겠다는 마음, 이웃이 어려움에 처하면 서로 도우려는 마음, 하와이안스와 얽힌 스토리에서는 많은 것들이 읽혔다. 촌스러울 정도로 ‘착한’ 스토리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얘기들이었다.

이와키(후쿠시마)=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일본 후쿠시마#스파리조트 하와이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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