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核 포기는 비현실적” 北이 노리는 건 ‘자포자기’ 여론? [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1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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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해 2차 북미정상회담과 비핵화 관련 논의를 했습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또 북미 관계에는 진전이 있지만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를 이끌어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완전한 핵 포기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없다면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취해야 할 입장과 역할은 무엇일까요?

차지현 연세대 경제학과 14학번 (아산서원 14기)




A.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미 이후 2월말 정상회담 개최가 공식 발표되었지만, 아직 구체적인 논의 내용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와 관련하여 어떠한 전향적인 제안을 내놓았는지, 이에 대해 미국은 어떠한 상응조치 언급했는지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다만 2차 정상회담의 구체적일 일시와 장소가 발표되지 않았다는 점과 미국 국무부의 반응이 작년 5월 말 김영철의 방문 당시와 달리 매우 차분하다는 점을 볼 때 여전히 북미간의 시각차는 큰 것 같습니다. 결국 남은 한 달 여 기간 동안 얼마나 의미 있는 실무협상을 북미 양측이 갖게 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래에서는 질문한 내용에 하나씩 답변 드리겠습니다.

김영철 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은 북미 양측 모두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작년 10월 7일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이후 북미간의 공식적인 비핵화 협상은 단절되었습니다. 미국은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위해 실무협상을 제안했습니다. 북한은 김영철 부위원장의 11월 8일 방미를 약속하며 실무회담에 응할듯하였으나, 이를 전격 취소하였고 이후 협상을 거부해 왔습니다. 결국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북한이 취한 비핵화 조치는 하나도 없이 2018년을 마감한 것입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18일(현지 시간) 북미 고위급 회담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18일(현지 시간) 북미 고위급 회담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이 과정에서 북한이나 미국 모두 대화의 중단을 우려한 것 같습니다. 북한은 시간을 끌며 보다 유리한 협상 조건을 만들어 내려는 것이지 대화의 판 자체를 깰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대화가 중단될 경우 보다 강도 높은 경제제재가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미국 역시 북한과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화가 중단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비난을 받게 됩니다. 준비 없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임한 결과 북한의 외교적 고립만 탈피시켜주고 핵무기 개발에 시간을 벌게 했다는 비난입니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도 가능하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을 움직이기 위해 정보당국이 작년 12월부터 북한과 접촉을 한 것으로 보이고 이번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미를 성사시킨 것 같습니다.

북미관계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미결과를 분석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미국에서 내놓은 정보가 매우 제한되어 있습니다. 백악관 측이 이메일과 트위터로 밝힌 ‘2월말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의 기자 간담회 중 밝힌 ‘북한과 좋은 대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가 이루어지지 전에 대북제재를 유지하겠다’는 발언, 국무부 대변인실 보도자료에서 밝힌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 간의 1차 실무회담(1st meeting at the working level)’ 개최,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간담회 중 밝힌 ‘김영철 부위원장과의 좋은 대화와 비핵화 진전’ 발언 등이 전부입니다. 그 외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정상회담의 구체적인 일시와 장소가 아직 발표되지 않았고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이 작년 5월말 김영철 방미 당시에 비해 많이 차가와진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의 제안이 썩 매력적이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2월말이라는 기간을 대략적으로 언급했지만 아직 구체적 발표가 없다는 것은, 정상회담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되었지만 아직 무언가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작년 5월 31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뉴욕에서 김영철 부위원장을 만난 당일 국무부 대변인실은 특별기자회견을 열어 상세한 내용을 브리핑하고 질의응답을 가졌습니다. 반면 이번 워싱턴 면담과 관련해서는 5줄의 짧은 보도자료가 전부입니다.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의 여파를 감안하더라도 너무 냉담한 반응입니다. 향후 북미간 실무협상을 통해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다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커다란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북한의 완전한 핵 포기를 이끌어 내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시각에는 반대합니다. 바로 북한이 노리는 것이 그러한 ‘자포자기’ 여론이 확산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비핵화 협상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군사적 압박 없이 북한의 입장 변화를 유도해야 하는데 하루아침에 김정은 정권이 입장을 바꿀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 비핵화는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북한에 핵무기와 핵물질, 그리고 관련 시설을 없애면 되는 일입니다. 북한의 반대가 문제겠지만 우리가 중심이 돼서 국제사회와 함께 비핵화 노력을 지속한다면 언젠가는 풀릴 문제입니다.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오른쪽)이 18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출처 댄 스커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 국장 트위터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오른쪽)이 18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출처 댄 스커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 국장 트위터


북한에게 핵무기와 경제성장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들면 되고, 이러한 구도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면 됩니다. 금년 내, 또는 현 정부 임기 내 완전한 핵 포기를 이끌어 내지 못할지 몰라도, 영원히 가난 속에 살기를 희망하는 체제는 없을 것입니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기간 동안 튼튼한 한미동맹을 유지하면 우리는 대북 억제력을 유지하고 평화를 지속적으로 향유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겐 지속적으로 대화와 비핵화를 촉구하면서 경제문제 이외의 협력을 확대해 나가면 남북관계도 조금씩 개선될 것입니다. 오히려 특정 기간 내 문제를 풀고자 한다면 거꾸로 임기가 정해진 한국이나 미국보다 임기 없이 집권을 계속해 나가는 북한이 더 유리하게 됩니다.

일부에서는 비핵화를 위해 군사옵션을 이야기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는 한반도에 긴장을 너무 고조시켜서 우리 경제에도 위협이 됩니다. 굳이 우리가 쌓아 온 평화와 번영을 담보로 모험을 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반대로 북한과 신뢰를 쌓으면 핵은 위협이 아니라고 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이 역시 북한이 다른 의도를 갖게 될 경우 우리가 쌓아 온 평화와 번영을 담보로 모험을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현 시점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무언가 성과가 필요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 부적절한 합의를 하는 것입니다. 북한 비핵화의 핵심은 북한이 핵시설과 핵무기에 대한 철저한 신고·검증입니다. 특히 핵시설에 대한 검증과 관련하여 북한이 주장하는 참관(observation·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닌 시료채취(sampling·물질을 채집해서 과학적 방법으로 분석하는 것)에 합의해야 합니다. 이 시료채취 방식이 합의되지 않으면 북한 핵시설 폐기를 검증해도 북한이 얼마나 무기급 핵물질을 보유했는지 알 수 없고, 그 결과 북한에 핵이 남아 있는지 없는지를 모른 채 협상이 끝나게 됩니다. 북한은 이러한 이유에서 시료채취를 끝내 반대해 왔는데,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때 미국이 입장을 바꿔 시료채취를 포기하고 그 대신 미국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핵활동 동결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폐기하는 조건으로 제재를 일부 해제해준다면 비핵화 가능성은 더욱 멀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북한에 대해 검증가능한 비핵화의 필요성을 설득해야 합니다. 남북관계에 얽매여 북한에게 할 말을 못해서는 평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미국에 대해서도 검증방식에 양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주지시켜야 합니다. 2월말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기준은 철저하게 제대로 된 검증을 받아내는가에 달려 있다고 설득해야 합니다. 북한 비핵화는 어려운 일이지만 한국이 일관성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풀릴 문제라고 봅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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