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평양에 ‘조문정치’ 할 여유는 있을까?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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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6월 11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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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김대중 대통령 조의방문단 일행 6명이 서울에 온 2009년 8월 21일 저녁. 청와대 주변에는 “조문단이 검은색 서류가방을 들고 왔는데 거기에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가 들어있다”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취재에 들어갔지만 확인이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북한의 장거리미사일(ICBM) 발사(4월 5일)에 이은 2차 핵실험(5월 25일)의 여파로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이 정상회담을 카드로 남북관계를 반전시키는 ‘조문정치’를 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소문을 근거로 섣불리 기사를 쓰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조문정치’는 가능성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23일 청와대 방문을 자청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은 “저희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는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이 잘 실천되면, 앞으로 북남 수뇌들이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말씀하습니다”라며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의 자서전인 ‘대통령의 시간: 2008-2013’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평양으로 돌아간 김양건 부장은 28일 현인택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남북 정상회담을 원한다”고 정식으로 요청을 해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8월 청와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해 남한을 찾은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원동연 아시아태평양위원회 실장(오른쪽에서 두 번째부터) 등 북한의 조문사절단을 접견하고 있다. 사진제공 청와대. 
동아일보 DB.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8월 청와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해 남한을 찾은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원동연 아시아태평양위원회 실장(오른쪽에서 두 번째부터) 등 북한의 조문사절단을 접견하고 있다. 사진제공 청와대. 동아일보 DB.

이렇게 시작된 남북 정상회담 논의는 그 해 10월 김양건 부장과 임태희 당시 노동부장관의 싱가포르 비밀접촉(10월 17일)으로 급물살을 탔지만 통일부와 통전부간 개성회담(11월 7, 14일)에서 최종 결렬되게 됩니다. 남북간에 서로 조건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과정에 이명박 정부 내에 대화와 원칙을 놓고 대북정책의 노선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조문정치’로 시작된 이명박 정부의 첫 남북대화는 그렇게 결실을 맺지 못하고 다음해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침몰하게 됩니다.

10일 오후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별세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버전의 ‘조문정치’ 가능성을 둘러싼 다양한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도 관혼상제를 중시하는 나라입니다. 고인은 2000년 6월 평양에서의 첫 남북정상회담에 동행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습니다. 2011년 12월 26일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빈소를 방문해 상주인 김정은 위원장을 처음으로 만났다는 점에서 어떤 형식으로건 조의를 표할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관심은 어떤 형식과 수위인지에 모아집니다. 고위급 인사가 조문단을 이끌고 올수록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김 위원장의 의중을 읽을 수 있고, 조문단이 오지 않고 김 위원장이나 대남조직 명의의 조전만 온다면 그 반대일 것이라고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이 10일 말했습니다.
이희호 여사가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대표단 환송 오찬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배 제의에 화답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이희호 여사가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대표단 환송 오찬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배 제의에 화답하고 있다. 동아일보DB

10년 전 당시와 지금 상황을 비교해보면 북한이 조문단을 보내거나 조의는 전하겠지만 당시처럼 적극적인 ‘조문정치’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북한은 올해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미대화의 다리를 놓은 문재인 정부에 불편한 심기를 공개적으로 표시해왔습니다. 나아가 “중재자요 촉진자가 아니라 당사자가 되라”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북한이 남북대화를 통해 한국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야 할 상황인 것은 같습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아들에게 권좌를 물려주는 권력세습을 완성하기 위해 달러와 식량이 절실했습니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겹겹이 제재에 가로막힌 지금의 북한도 달러와 식량이 궁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도 미국의 허락 없이는 제재를 우회해 대북지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평양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겁니다.

10년 전은 북한이 전략도발로 한국과 국제사회의 우려를 키운 상황에서 우연하게 찾아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대화 재개의 계기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문정치’라는 표현이 어울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문재인 정부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경색된 북-미, 남북관계를 되살리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북한으로서는 굳이 조문을 대화 재개의 계기로 삼아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의 2018년 9월 20일 오전 백두산 장군봉 등반에 동행한 리선권 조평통위원장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왼쪽부터).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동아일보 DB.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의 2018년 9월 20일 오전 백두산 장군봉 등반에 동행한 리선권 조평통위원장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왼쪽부터).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동아일보 DB.

10년 전에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보다는 남북관계가 위축되었지만 김양건과 같이 오랫동안 남북관계를 실행해 온 베테랑 엘리트들이 살아 있었고 통전부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등 조직들도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평양에서는 대미라인과 동시에 대남라인에 대한 일제 검열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통전부장에서 물러난 뒤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김성혜 통전부 통일전선책략실장 등에 대한 검열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아태와 민화협 등은 대남 사업을 전면 중단하고 문을 닫아건 상황입니다.

곧 공개될 것으로 보이는 북한의 이번 조문 및 조의 형식과 수위는 안팎으로 불편한 북한의 상황을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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