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완준]중국을 위한 변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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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는 일단 한쪽 옆에 놔두고 우선 한중 관계를 개선하자는 게 한중 합의 정신 아닌가?”

얼마 전 중국 정부 측 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뒤 한중 관계 개선이 기대만큼 속도가 나지 않는 듯해 건넨 말이었다. 한국행 단체관광이 일부 다시 제한됐다는 얘기가 들리던 때였다. 정상회담 전 중국의 사드 파상 공세로 생긴 불신이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이기도 했다.

“한국 정부가 사드 문제를 한쪽 옆에 놔두자는 말(한국식으로 말하면 봉인일 것이다)을 하는 것 자체가 중국 당국에는 압박이 된다.”

답은 예상 밖이었다. 한국의 사드 관련 입장 표명을 중국이 ‘약속’이라고 공세를 취하는 것에 한국이 압박을 받는 것처럼 중국 정부도 한국 정부의 발언에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 방중 전후 만난 중국 측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적지 않은 중국인이 “중국 입장에서는 사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지나가야 하느냐”며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정부가 사드 보복 조치를 잇달아 취하던 시기 중국에서는 “사드를 철수하지 않으면 한중 관계도 없다”는 초강경 여론이 다수였다.

문 대통령 방중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만찬 및 문화공연 사진을 공개하지 말 것을 중국 측이 요구한 데 대해 한 인사는 “사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왜 이리 관계가 금방 뜨거워지느냐는 여론을 의식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측 관계자들은 “국가 차원의 단체관광 금지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여전히 어떤 이들은 한국에 관광 가면 애국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사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롯데면세점에 어떻게 가느냐고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 정부의 강경 사드 보복이 여론을 그렇게 만든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한중 관계를 개선하려는 시기에 그 강경 여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처지는 알 수 있다. 중국 정부 내에도 강경 여론이 있을 것이다.

중국 측은 “한중 관계 회복의 추세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한중 관계 개선의 필요성은 이미 주류가 됐고 작은 일들이 큰 흐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관계 개선 속도에 대한 한국인의 기대치가 중국보다 높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국과 관계를 회복해야 북핵 해결과 한중 무역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중국 여론을 이해시키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국 국민의 감정은 서서히 풀릴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런 설명들에는 한중 관계 개선이 속도를 내려면 사드 관련 후속 조치에서 한국이 더 분명한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압박이 숨어 있다. 사드 배치 주체인 미국이 한중 관계 개선을 원하지 않는다는 강한 불신이 깔려 있다.

하지만 한국은 중국 아니면 미국의 이분법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나라다. 중국의 속사정을 정확히 파악해야 대처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그래야 어느 나라 정상이건 다 만나는 서열 1∼3위 시진핑 리커창 장더장을 문 대통령이 만난 것을 두고 “특별한 환대를 받았다”고 국민의 기대를 지나치게 높이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미국 대통령처럼 대우받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뜨리는 것 역시 도움이 안 된다.

사드 갈등 때는 서로 불신하고 욕하면 그만이었다. 한중 관계는 전환기에 들어섰지만 불신은 회복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방중 때 강조한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지금이 더 중요해졌다.

베이징=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
#사드#한중관계#시진핑#문재인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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