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보다 더 최악” 트럼프 레이더에 걸린 ‘베트남 무역 미스터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7일 15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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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베트남은 올해 1~5월 중국에서 51억 달러(약 5조9200억 원)어치 전자제품과 컴퓨터를 수입했다. 수입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1% 급증한 셈이다.

같은 기간 베트남의 전자 제품과 컴퓨터의 대미 수출액도 18억 달러로 72% 늘었다. 미중 무역전쟁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베트남에서 특정 중국산 수입품과 미국 수출품이 동시에 급증하는 ‘특이한’ 교역 패턴이 나타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 “미국의 대중국 관세가 무역 속임수에 따라 무뎌지고 있다”며 올 들어 특정 상품의 중국산 수입과 미국 수출이 모두 급증한 베트남의 교역 패턴을 지적했다. 컴퓨터와 전자 제품 외에도 베트남의 기계와 설비 교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베트남 세관 통계에 따르면 베트남의 기계류와 설비 대미 수출은 올해 1~5월 54.4%가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국에서 수입된 기계류와 설비는 29.2% 늘었다.

미국은 중국산 수입과 대미 수출이 동시에 증가한 원인으로 미국의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한 중국 기업의 ‘원산지 갈이’를 의심하고 있다. 중국산 상품을 수입한 뒤에 원산지 표시만 ‘베트남’으로 바꿔 미국으로 수출하면 미국의 대중 관세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세관국경보호국(CBP)는 WSJ에 “최근 몇 달간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에서 중국산 상품의 불법 환적이 확인됐다”며 “지속적으로 추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만과 중국인 소유의 캄보디아 경제특구도 관세 회피를 위한 ‘원산지 갈이’ 경로로 의심을 받고 있다.

베트남은 미중 무역전쟁의 반사이익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국가로 꼽힌다. 미국의 관세를 피해 중국을 탈출하는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미국의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관세 회피’ 경로라는 낙인이 찍힐 경우 미국 정부의 보복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은 2018년 5월 베트남산 일부 철강 수출품에 중국산 철강이 상당 부분 포함된 것을 확인하고 베트남산 철강 일부에 250% 관세를 부과했다.

베트남 정부도 원산지 갈이를 위한 환적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WSJ에 따르면 베트남 산업통상부는 “베트남에서 생산된 것으로 원산지를 표시하는 무역 사기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 원산지 표시 사기는 제품과 소비자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베트남산 제품의 명성과 경쟁력을 현저히 떨어뜨린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베트남을 콕 집어 손을 보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다. 그는 이날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많은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이전하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은 중국보다 더 우리를 나쁘게 이용하고 있다”며 작심하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베트남과 대화를 하고 있다”며 “베트남은 중국보다 작지만 거의 최악의 착취자(abuser)”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과 구체적 논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고, 베트남에 관세를 부과할 것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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