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장혁]中企, 가족들이 80시간 일하며 회사 유지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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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단축-최저임금 인상 뒤 투자도 포기하고 회사는 쪼개질 판
벼랑 끝 몰렸는데 무능하다 비난까지… “우리도 노조 만들자” 사장들 하소연
中企가 살아나야 고용문제도 풀린다

윤장혁 아산 득산농공단지협의회장·화일전자 대표
윤장혁 아산 득산농공단지협의회장·화일전자 대표
“올해 목표는 생존입니다.”

연초 직원들이 모인 시무식에서 나는 말했다. “올 한 해 여러 상황들이 등골을 오싹하게 합니다. 다들 각오 단단히 합시다.” 직원들의 표정이 비장했다. 지난해 회사 매출이 하반기로 갈수록 줄어들더니 4분기는 20% 넘게 떨어졌다. 국내 주문량은 점점 줄 것이 뻔해 올해 사업계획을 확정하지 못했다. 위기감에 주변 공단을 다녀봤다.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중소기업들이 비용을 줄이려 생산라인을 해외로 옮기고 있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때문에 생산기지가 해외로 옮겨가고, 국내 산업의 위축과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 이라는 우려는 이제 현실이 됐다. 2017년 23개 기업이 입주했던 충남 아산 득산농공단지는 2개 업체가 폐업해 문을 닫고 올해 21곳이 가동 중이다. 남은 업체들은 사정이 좋지 않다.

인접한 다른 중소기업들 사정을 들어봤다. 대기업 자회사였던 자동차 관련 업체 A사는 구조조정을 거쳐 분사했다. 불황에 대비해 미리 구조조정을 했는데도 지난해 매출 감소가 예상보다 너무 커 적자를 냈다. 직원 상여금을 절반으로 줄이고 비용을 쥐어짜 겨우 올해 사업계획은 만들었지만 금융권에서 “여신(대출)을 규제하겠다”는 통보가 왔다. A사는 내년에 회사를 2, 3개로 분할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직원이 300명을 넘으면 주 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쪼개질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외자기업 B사는 최저임금이 일본 본사를 넘어섰다. 그래도 본사 물량을 믿고 생산라인을 늘리려는데 이번에는 주 52시간이 발목을 잡았다. 본사 투자를 받아 라인을 늘리면 직원을 더 뽑아야 한다. 그러면 300인 이상 사업장이 돼 주 52시간 적용을 받는다. 근로시간이 줄면 가동도 줄어 라인 증설 효과가 사실상 제로가 된다. 그렇다고 또 추가로 사람을 뽑기엔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다. 결국 B사는 증설을 포기했다.

중견 금형업체 C사는 협력업체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금형은 특성상 2, 3차 협력사도 숙련된 기능공이 많아야 한다. 협력업체들은 최저임금 인상 효과로 인건비가 급증했다. C사도 납품 단가를 올려줘야 할 처지에 놓였다. C사는 이제 해외 협력업체를 물색하고 있다.

소상공인의 세무를 대행하는 세무사들 말을 들어보면 처지는 더 딱하다.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을 아르바이트 시간 감축으로 지탱했는데 예상치 못한 폭탄을 맞았다. 정부가 주휴수당을 최저임금 산정 시간에 포함시킨 것. 이후 많은 소상공인들은 가족끼리 모여 주 70∼80시간씩 일하며 업체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해준 세무사무소도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신입직원은 최저임금 인상을 반영해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연봉이 2200만 원 정도인데 여기에 퇴직금, 4대 보험, 복리후생비까지 붙는다. 늘어난 인건비 때문에 사무소를 유지하려면 소상공인들에게 받는 세무 조정료를 올려야 하는데 그들 처지 때문에 딱해서 못 올리고 있다.

일자리를 늘리고 양극화를 개선하겠다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오히려 양극화를 더 심화시켰고 고용을 악화시켰으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기에 빠뜨렸다. 최근 1년 반 새 벌어진 일들을 보자. 지난해 최저임금 16.4% 인상, 올해 10.9% 또 인상,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위반하면 사업주는 징역이나 벌금에 처해진다.

얼마 전 중소기업인들이 모인 자리가 있었다. 참석자 중 한 명이 “‘중소기업당’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하소연 섞인 농담을 했다. “차라리 중기인 노조를 만들자”는 발언도 나왔다. 한 중기 사장은 “입으로는 중기가 애국자라고 치켜세우면서 최저임금 올려버리고, 그것 못 주면 무능하다 퇴출시켜라 비난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다른 사장은 “근로시간 단축은 문제가 심각하니 노사 협의로 방법을 찾아보자고 그렇게 말해도 결국 법으로 밀어붙였다. 중기인들을 범죄자 만들자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중기는 한국 산업과 고용의 80% 이상을 감당하고 있다. 고용은 공무원 늘리고 대기업 압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중기가 살아나야 한다. 중기인들이 기업가 정신으로 도전하고, 젊은이가 벤처를 창업해 중기로 키워야 고용이 는다.
 
윤장혁 아산 득산농공단지협의회장·화일전자 대표
#중소기업#주52시간#근로시간 단축#최저임금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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