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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책임제 채택한 초안, 본회의 보고 이틀전 대통령제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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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책임제 채택한 초안, 본회의 보고 이틀전 대통령제로 변경

홍정수 기자 입력 2018-07-16 03:00수정 2018-07-16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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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헌법제정 70주년]제헌헌법 어떻게 만들어졌나
이승만, 남북대치 등 이유 들어 “강력한 지도자 필요” 대통령제 관철
바이마르 헌법 등 각국 사례 참고
첫 총선 1948년 5월 10일 제헌국회 구성을 위한 총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첫 투표를 하고 있다. 유엔 총회에서는 유엔 감시 아래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해 정부를 수립하기로 했으나 소련의 거부로 남한에서만 총선거가 실시됐다. 동아일보DB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의 첫 헌법이 공포됐다. 헌법 제정은 국가의 기틀을 닦는 중요한 일이었지만 제헌헌법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헌법 전문가들은 제헌헌법에 대한 이해가 향후 개헌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고문현 한국헌법학회장은 “헌법은 모든 정치 세력 간의 타협의 산물”이라며 “30여 년 만에 개헌 논의 물꼬가 트이려는 지금이 그동안 냉대해온 제헌헌법과 제헌절의 역사적 의미를 고찰할 적기”라고 말했다.

○ 70년 논란의 시작 ‘대통령제’

제헌국회 개원식 1948년 5월 31일 옛 국회의사당이었던 광화문 중앙청 중앙홀에서 거행된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이승만 초대 국회의장(왼쪽 위)이 개원사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현재 개헌 논의에서도 여야 간 가장 큰 이견을 보이는 부분인 정부 형태와 권력 구조다. 이는 제헌 당시는 물론 이후 개헌 때마다 가장 뜨거운 쟁점이었다. 제헌 헌법 초안에 담긴 정부 형태는 내각책임제였다. 하지만 당시 국회의장이던 이승만 박사의 강한 압박으로 공포 직전 대통령 중심제로 바뀌었다.

‘현민 유진오 제헌헌법 관계자료집’에 따르면 제헌국회 의원 30명으로 구성된 헌법기초위원회를 이끌던 유진오 박사는 내각책임제 정부 형태를 채택한 헌법 제정을 추진했다. 국회 본회의에 초안을 보고하기 이틀 전인 6월 21일 이승만 당시 국회의장은 “(남북 대치 상황 등) 비상 시국에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대통령책임제를 고집했다. 결국 그날 밤 제헌헌법 초안의 정부 형태는 ‘대통령제’로 확정됐다.

이를 두고 그동안은 이승만이 과도한 권력욕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에 집착했다는 비판적 의견이 주류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제헌헌법에 대통령제가 담긴 배경과 의의에 대해 좀 더 면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헌법재판소 이진철 헌법연구관은 지난달 발표한 논문 ‘제헌헌법의 영장주의’에서 유진오의 내각책임제가 애초부터 비현실적인 제안이었을 수 있다는 가설을 내놨다. 이승만이 1904∼1906년 옥중에서 집필한 저서 ‘독립정신’ 등을 포함해, 이미 구한말부터 미국식 대통령제를 가장 진보한 정치제도라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는 것이다.

○ 북한 헌법까지 참고한 제헌헌법
의원들 기념 촬영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식을 마친 뒤 옛 국회의사당이던 중앙청 앞에서 초대 국회의원들이 함께 모여 찍은 단체사진. 제주지역 2석을 제외한 전체 의원 198명 중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한국민주당, 대동청년단, 조선민족청년단, 무소속 등 의원 193명과 국회 사무총장이 참석했다. 동아일보DB
유진오 박사의 ‘헌법기초 회고록’에 따르면 제헌국회는 바이마르 헌법부터 중국 헌법까지 세계 각국 헌법을 참고해 1차 초안을 작성했다. 이후 논의 과정에서 참고한 다양한 헌법 관련 문서에는 일명 ‘괴뢰정권안’으로 불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도 포함돼 있었다. 북한은 우리보다 앞서 1948년 4월 27일 헌법 초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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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법의 상위법’인 헌법보다 먼저 만들어진 법도 있다. 1948년 5월 10일 제헌국회의원이 선출됐지만, 정작 헌법을 만들 국회를 운영할 국회법은 마련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의원은 국회가 개원하기 이전인 같은 달 27일 ‘국회의원 예비회의’를 열어 임시준칙을 제정했다. 이때 만들어진 국회법이 같은 해 6월 10일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한편 제헌절은 제헌국회에서 1949년 국경일로 지정돼 1950년부터 2007년까지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등과 함께 국가공휴일이었다. 하지만 10년 전부터 5대 국경일 중 유일하게 공휴일에서 제외되며 국민들의 관심에서 급격히 멀어졌다. 고 회장은 “국가의 토대를 쌓은 날을 국민 전체가 함께 기념할 수 있도록 다시 국가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내각책임제 채택한 초안#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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