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퇴계·다산의 묘비명엔 어떤 글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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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기행/심경호 지음/768쪽·2만5000원·민음사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영국 작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와 ‘그리스인 조르바’로 유명한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의 묘비에는 이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두 서양 작가의 묘비명은 20세기에 쓰였지만 동양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묘비명을 스스로 짓는 전통이 있었다.

한문학자인 저자를 따라 우리 선조들의 자찬묘비(自撰墓碑) 58편을 안내한다. 고려시대의 조촐한 비석에서 퇴계 이황(1501∼1570) 등 조선의 대학자가 쓴 묘비를 거쳐 구한말 이국땅에 묻힌 지식인의 묘지까지. 이들의 묘비명을 통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태어나 크게 어리석었고 자라서는 병치레가 많았다. 배움은 추구할수록 아득해지고 벼슬은 사양할수록 얽어 들었다.”

퇴계가 죽기 며칠 전 쓴 자명(自銘)이란 글의 일부다. ‘조선의 지성’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학문적 성취를 이룬 그였지만 객관적 시선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엄정한 선비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너는 말하지, 나는 아노라 사서와 육경을. 하지만 행한 바를 살펴보면 어찌 부끄럽지 않으랴.”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에서 삶의 반성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오랜 유배 기간 등 주변의 조건을 원망하는 대신 내면의 성찰을 강조한 대학자의 깨달음을 느낄 수 있다.

개성 넘치는 선비의 삶을 살펴볼 수도 있다. 상고당 김광수(1696∼?)는 자신의 묘비명에 “옛 그릇과 글씨와 그림, 붓과 연적과 먹에 대해서는 진위를 감별해 작은 착오도 없었다”고 적었다. 실제로 그는 명문가 출신임에도 벼슬을 버리고, 18세기 조선의 대표 컬렉터로 이름을 날리다 궁핍하게 생을 마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내면기행#심경호#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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