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번호 716’ 13㎡ 독방 불면의 밤… “같은 질문엔 조사 거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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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前대통령 구속 수감]서울동부구치소 수감 첫날


23일 새벽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돼 첫날 밤을 보낸 이명박 전 대통령(77·구속)은 기상시간인 오전 6시 30분을 넘겨 일어났다. 많이 피곤해 보이는 모습에 교도관도 이 전 대통령을 강제로 깨우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기상 후 오전 7시를 넘겨서야 이 전 대통령은 아침식사를 배급받았다. 모닝빵과 잼, 두유, 양배추샐러드가 나왔다. 낯선 환경에서 잠을 잘 자지 못한 탓인지 이 전 대통령은 식사를 남겼다. 식사 후 1시간이 지나 교도관이 음식물 반납통을 가지고 와 남은 음식을 가져갔다. 이 전 대통령은 다른 수용자들과 같이 직접 싱크대에서 식기를 씻어 반납했다. 점심은 돼지고기 김치찌개, 마늘종, 중멸치볶음, 조미김, 깍두기로 식사를 했고 저녁은 감자수제비국, 오징어 젓갈무침, 어묵조림, 배추김치로 했다.

오전에는 아들 이시형 씨(40) 등 자녀 4명이 동부구치소로 찾아와 이 전 대통령의 접견 신청을 했지만 무산됐다. 일반 접견을 하면 일반 수용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만나야 하는데 안전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어 구치소 관계자가 양해를 구하고 가족들을 돌려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 입소 후 수의 입고 ‘머그샷’ 촬영

22일 오후 11시 5분 구속영장 발부 후 이 전 대통령은 검찰의 K9 승용차를 타고 23일 0시 20분 동부구치소에 도착했다. 신입 수용자들에게 적용되는 입소 절차에 따라 교도관에게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인적사항을 확인받은 뒤 간단한 신체검사를 받았다.

이 전 대통령은 영장 집행 전 자택에서 챙긴 현금을 구치소에 와서 영치금으로 넣었다고 한다. 소지품을 모두 영치한 이 전 대통령은 남성 미결수용자들이 입는 황토색 수의와 작은 직사각형의 광목천을 제공받았다. 광목천에는 수인번호 ‘716’이 적혀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은 수의 왼쪽 가슴에 수인번호를 붙이고 샤워를 한 후 수의로 갈아입었다. 과거에는 수용자가 바느질을 해 수인번호를 수의에 붙였으나 최근에는 벨크로(일명 찍찍이) 형태로 제작돼 그냥 붙이면 된다. 이 전 대통령은 이어 구치소 생활규칙에 대한 설명을 듣고 수용기록부에 붙일 사진인 이른바 ‘머그샷’을 촬영했다.

‘716’은 구치소의 컴퓨터가 무작위로 배정한 번호다. 하지만 나름대로 규칙이 있다. △여자 미결수 △여자 기결수 △남자 미결수 △남자 기결수 △기결수 중 노역수 등 총 5가지 신분을 구별할 수 있게 번호를 100단위나 1000단위로 나눠 놓는다. 구치소, 교도소마다 규칙이 다르기 때문에 해당 기관의 교도관들만 수인번호의 뜻을 알 수 있다. 신분에 따른 번호 구역을 지정해 놓으면 컴퓨터가 맞는 번호를 할당한다. 따라서 서울동부구치소의 수인번호 ‘716’은 남성 미결수가 받을 수 있는 번호인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66·구속 기소)은 지난해 3월 31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수인번호 ‘503’을 받았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1시경 12층에 있는 10.13m²(3.06평) 크기의 독방에 도착했다. 화장실(2.94m²)까지 합하면 총 13.07m²(3.95평)다. 서울구치소에 수용된 박 전 대통령의 독방 면적은 화장실을 포함해 10.08m²(3.04평)다. 화장실에 샤워기는 없지만 12층에는 다른 수용자가 없어 공용샤워장을 이 전 대통령이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 독방에는 폐쇄회로(CC)TV는 없다.

동부구치소는 지난해 9월 공식적으로 문을 열어 최신식 시설을 갖췄다.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대형 종합병원이 가까워 응급 상황에 대처하기도 좋다. 반면 아파트형이라 맨땅 위에서 걷거나 운동할 기회가 없다. 그 대신 12층에 농구코트 절반 정도 크기의 운동공간이 있다. 이 전 대통령은 휴식시간에 이곳에서 매일 1시간까지 운동할 수 있다.

동부구치소는 지하 통로로 동부지법과 동부지검으로 연결돼 있어 수용자들이 이동 중에 햇볕을 직접 쬐지 못한다고 아쉬워한다. 동부구치소는 유력 인사들을 관리한 경험은 적지만 박 전 대통령을 관리하는 서울구치소 교도관 전담팀(7명)을 벤치마킹해 이 전 대통령 전담팀을 7명으로 꾸렸다.

○ ‘출장 조사’ 후 4월 초 기소할 듯

검찰은 26일 동부구치소를 방문해 이 전 대통령을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례대로 구치소 출장 조사를 나가면 이 전 대통령의 독방 옆 심리상담실을 이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검사 신봉수)와 특별수사2부(부장검사 송경호)는 6·13지방선거 등을 고려해 몇 차례 출장 조사를 한 다음 구속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수사와 기소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구속 후 기소 전까지 총 5차례 구치소 방문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구속영장 혐의에 대한 보강수사를 벌이면서 ‘국가정보원 정치공작’ 등에 대한 추가 수사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 측은 검찰 조사에 불응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23일 이 전 대통령 구치소 접견을 마치고 나온 강훈 변호사(64)는 “지난번 (소환)조사에서 바꾸거나 첨부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 만약 (검찰이)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 (이 전 대통령이) 진술을 거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재판은 준비기일 등을 거쳐 5월경에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전주영 aimhigh@donga.com·허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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