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 아니어도 ‘미투’ 들불… 조재현-윤호진-배병우 뒷북사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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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전반으로 확산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을 비롯한 연극계 ‘거장’들로부터 촉발된 ‘미투’ 운동이 뮤지컬 음악 미술 등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가해자인 교수의 권위나 배우의 명성 등 권력관계에서 을(乙)의 지위였던 피해자 대부분은 숨죽이며 지내다 미투 열풍을 계기로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뮤지컬배우 지망생이라고 밝힌 한 여성은 23일 연극·뮤지컬 인터넷 커뮤니티에 ‘40대 후반의 유명 남성 뮤지컬배우 A 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는 글을 올렸다. 이 여성은 2년 전 지인을 통해 알게 된 A 씨와 예술의전당에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 이후 A 씨가 ‘밥을 같이 먹자’며 차에 태우더니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가슴을 만졌다는 것이다. 여성은 “A 씨는 지금도 대형 뮤지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며 “유명한 사람을 보면 그저 신기하고 좋았을 때라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고 적었다.

유명 피아니스트 B 씨에게 성추행 당했다는 폭로도 이어졌다. 문화공연 기획자인 이 여성은 최근 페이스북에 “2014년 3월 공연 뒤풀이에서 단둘이 남게 되자 B 씨가 강제로 소파에 눕히고 키스하며 몸을 만졌다”고 주장했다. 현재 성추행 혐의를 두고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문화예술인의 산실인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미술대학 학생회가 8개월째 벌여온 교내 성폭력 강사 퇴진 운동도 미투 열풍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예종 미대 학생회는 지난해 4월부터 미대 건물 앞에 강사들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대자보를 붙이며 성폭력 추방 운동을 벌여오고 있다.

학생회에 따르면 강사를 맡았던 유명 디자인업체 대표 C 씨는 지난해 수업 후 매번 술자리를 만들어 양 옆에 여학생들을 앉힌 뒤 허리와 다리 등을 만졌다. 2, 3차로 술자리가 이어지면서 성추행과 성희롱 발언 수위도 높아졌다. C 씨는 여학생들에게 “넌 못생겼으니 고개 숙이고 그림만 그려라” “넌 예쁘니 학점 잘 받을 것”이라는 등 노골적으로 외모 차별 발언을 했다는 게 학생회 주장이다.

C 씨는 2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술자리 끝에 노래방에서 흥에 겨워 학생을 안아준 것을 불편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제보로 C 씨의 성 관련 비위를 확인하고 지난 학기 해임했다. 한예종 총학생회는 미투 열풍 이후 전교생에게 성폭력 피해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측은 미투 열풍이 거세지자 뒤늦게 사과했다.

배우 조재현 씨는 24일 “잘못을 인정하고 모든 걸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현재 주인공으로 출연 중인 tvN 월화 드라마 ‘크로스’에서도 하차할 예정이다. 또 조 씨는 DMZ국제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직에 대해 25일 사표를 제출했다. 서울예술대 교수 시절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진작가 배병우 씨(68)는 25일 “저의 잘못의 심각성을 통감했다. 상처받으신 분들께 깊이 사과드린다”며 공식 사과했다.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 등을 만든 윤호진 에이콤 대표(70)는 24일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과드리겠다. 저의 거취를 포함하여 현재 상황을 엄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무겁게 고민하고 반성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윤 대표로 추정되는 사람이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윤 대표는 28일로 예정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뮤지컬 ‘웬즈데이’ 제작발표회를 무기한 연기했다.

신도를 성폭행하려던 한모 신부가 소속된 천주교 수원교구 교구장인 이용훈 주교는 25일 ‘수원 교구민에게 보내는 교구장 특별 사목 서한’을 홈페이지에 올려 “피해 자매님과 가족들 그리고 교구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한다. 그릇된 것들을 바로잡고 사제단의 쇄신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청주대 교수였을 때 제자들을 상습 성추행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배우 조민기 씨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이에 청주대 연극학과 11학번 재학생과 졸업생 38명은 “2011년부터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켜봐왔다”며 조 씨에 대한 의혹이 모두 사실이라고 밝혔다.

김동혁 hack@donga.com·박선희 / 청주=장기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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