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미인대회 입상’ 스펙 채우려다… 성추행에 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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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생들 피해 속출

취업준비생 A 씨(23)는 얼마 전 한 미인대회에 참가했다. 한국 전통의 멋에 어울리는 여성을 선발하는 대회였다. 참가비는 30만 원. 처음 열린 대회라 생소했지만 입상하면 취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변의 말을 듣고 용기를 냈다.

본선이 열리기 전 주최 측이 마련한 참가자 회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주최 측 임원 B 씨는 “회식도 사회생활이다” “술도 잘 따를 줄 알아야 한다” 등의 말을 반복했다. 회식이 끝난 뒤 B 씨는 A 씨 등 참가자 일부에게 2차 술자리를 제안했다. 거절하면 대회 결과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한 A 씨는 어쩔 수 없이 술자리에 참석했다.

자리를 옮긴 뒤 B 씨는 A 씨에게 “왜 춤을 안 추냐”며 강제로 무대로 끌고 나갔다. 다른 임원은 A 씨 바로 뒤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들은 다른 참가자의 어깨와 허리 등에 손을 대고 춤을 췄다. 놀란 A 씨는 “화장실에 간다”고 말한 뒤 밖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두려움 속에 겨우 대회를 마쳤다.


최근 취업을 앞둔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미인대회가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이름을 들어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대회들이다. 주제도 비슷해 한복 관련 미인대회는 올해 전국적으로 10개 넘게 열렸다. 소규모 미인대회라도 경쟁률은 3∼5 대 1을 넘는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 중인 C 씨는 “주변을 보면 미인대회 입상자가 취업이 잘되는 경우가 많아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시들해졌던 전문학원의 인기도 다시 오르고 있다. 일대일 과외나 화상수업까지 열린다. 수업은 회당 10만∼20만 원 선. 미인대회 출신 강사에게 드레스나 수영복을 입고 걷는 모델워킹이나 인터뷰, 장기자랑 요령 등을 배울 수 있다. 각 대회의 특성을 분석하고 참가자의 식단과 몸매 관리도 책임진다. 한 미인대회 전문학원 관계자는 “승무원과 아나운서 준비생뿐 아니라 대기업 취업준비생까지 다양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회를 둘러싼 공정성이나 과장 홍보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한 번 열린 뒤 1년 만에 없어지는 대회도 있다. 대회 과정에서 성희롱 등 갑질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스펙 하나가 아쉬운 취업준비생들은 제대로 항의조차 못 한다.

20대 여성 D 씨는 참가비 수십만 원을 내고 한 미인대회에 지원했다. 다행히 입상권에 들어 상금도 받게 됐다. 그러나 주최 측은 뒤늦게 대회 당일 “상금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신 제주도 여행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E 씨도 한 미인대회에 참가했다가 주최 측 관계자가 마련한 회식에 참석했다. 이 관계자는 “나는 스무 살 넘게 차이 나는 여자를 주로 사귄다. 너희도 나이 많은 남자들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대부분 참가자에게 “대회 기간 발생한 근거 없는 루머 등을 폭로해 업무에 지장을 줄 경우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서약서를 작성하게 한다. 인터넷에 부정적 내용이 담긴 후기도 올리지 못하게 한다. 대회에 참가했던 20대 여성 F 씨는 “주최 측 인사가 방송계나 연예계 인맥을 과시하며 취업까지 도와주겠다고 해서 내가 겪은 사실을 드러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최 측은 탈락한 참가자들의 과민 반응이라는 의견이다. 미인대회 주최 측 임원 B 씨는 “대회에서 떨어진 참가자들이 안 좋은 감정으로 문제 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술자리에서 신체가 닿을 순 있지만 일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취준생#미인대회#스펙#성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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