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HK연구소 일괄 지원배제에…전국 인문학자 513명 뿔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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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HK플러스사업 재검토’ 성명

진재교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장은 교육부의 기존 HK사업 참여 연구소 지원 배제 방침에 대해 “국가의 수준을 보여주는 인문학에 이 정부가 과연 관심이라도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비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진재교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장은 교육부의 기존 HK사업 참여 연구소 지원 배제 방침에 대해 “국가의 수준을 보여주는 인문학에 이 정부가 과연 관심이라도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비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전국의 인문학자들이 정부의 ‘인문한국 플러스(HK+) 지원사업’에 집단 반발하고 나섰다.

인문학 교수 513명은 21일 ‘인문한국(HK) 지원사업을 무력화시키는 인문한국 플러스(HK+) 지원사업의 재검토를 요구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20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공동성명서에는 “지난 10년간 국고 수천억 원을 투입해 기초인문학 연구 역량을 구축한 43개 연구소를 배제하는 것은 인문학 연구 기반을 부정하는 처사”라며 “200여 명의 인문학 연구자를 아무런 대책 없이 실직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문학계에서 정부의 정책에 집단으로 반발한 것은 1999년 이공계 분야에만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했던 ‘BK21(두뇌한국)’ 사업에 이어 18년 만에 처음이다. 당시 정부는 학계의 반발을 수용해 BK21 사업에 인문·사회학계의 참여를 보장했다.

이번 공동성명에 참가한 이들은 ‘HK연구소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소속으로 HK에 참가한 전국 42개(1개 연구소 제외) 인문학 연구소 관련 교수들이다.

○ 신진 인문학자들 ‘집단 멘붕’

인문학계는 교육부의 HK플러스 지원사업에 대해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HK연구소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6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나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등 대한민국의 우수 인문학 연구소들을 배제하겠다는 인문학 말살
 정책”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대 규장각의 외부 전경. 서울대 제공
인문학계는 교육부의 HK플러스 지원사업에 대해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HK연구소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6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나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등 대한민국의 우수 인문학 연구소들을 배제하겠다는 인문학 말살 정책”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대 규장각의 외부 전경. 서울대 제공
인문학계가 이처럼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세대 국학연구원 등 기존의 HK 연구소들을 신규 ‘HK플러스’ 지원사업에선 일괄 배제하기로 한 방침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기존 연구자들의 성과는 인정하지만 신규 연구소들의 수요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성민 건국대 인문학연구원장(철학과 교수)은 “최근 10년간 신규 HK 연구소를 모집해 이미 인문학 역량을 갖춘 대부분의 연구소들이 참여하고 있다”라며 “하루아침에 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면 누가 인문학을 하겠느냐”고 반박했다.

2007년부터 시행된 HK 지원사업은 개별 학과가 아닌 연구소를 중심으로 지원 활동을 펼쳐왔다. 10년간 3600여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HK교수(전임) 229명과 HK연구교수(비전임) 193명, 연구원 427명 등 신진 학자들을 인문학계에 대거 유입시키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로 인해 존폐 위기에 처한 한국 인문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사업으로 평가받아 왔다. HK 연구인력의 1명당 연평균 발표 논문은 2.3편, 저서는 0.6권이다. 일반 대학 전임교원(논문 0.81편, 저서 0.19권) 연구 성과의 3배에 이른다.

하지만 교육부가 HK플러스 지원사업에서 이들을 배제하면서 전임 교원이 아닌 HK연구교수와 연구원들은 실직 위기에 놓여 있다. 김재희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HK연구교수(50)는 “주 전공이었던 서양철학을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과 결합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최근엔 국제 학술대회에 초청받는 등 인문학자로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며 “그동안 축적한 연구 성과와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지원을 끊겠다고 하니 너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기존 HK 참여 연구소에 대한 평가가 끝나지 않아 당장 내년 예산을 지원하긴 어렵다”며 “평가 완료 뒤에 지원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일부 연구소에 한해 후년부터 연간 2억 원 수준의 연구비를 지원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대위 관계자는 “현재 HK교수에게 지원되는 연구지원비가 1인당 연간 1억5000만 원가량”이라며 “연구소당 수십 명의 연구자가 있는데 2억 원을 지원한다는 것은 인문학계를 농락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 이공계 대비 인문학 홀대 논란

정부가 이공계 지원 사업에 비해 인문학 관련 정책을 홀대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공계 대학을 중심으로 지원을 펼친 BK21의 경우 2차(2006년), 3차(2013년) 사업에서 신규와 기존 연구소 모두를 수용해 지원을 펼쳤다. 진재교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장(한문교육과 교수)은 “20조 원 가까이 되는 이공계 지원에 비해 인문학 예산은 1년에 고작 수천억 원 수준”이라며 “새 정부 100대 과제에서 순수 기초 연구 예산을 2배 확충하겠다고 했는데 이공계에만 해당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애초 HK는 후속 사업에 기존 사업자를 전입시키는 방안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비대위는 “교육부가 방침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국회에 국정조사까지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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