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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의 뉴스룸]농민은 여전히 속이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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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의 뉴스룸]농민은 여전히 속이 탄다

박성민 경제부 기자 입력 2017-07-18 03:00수정 2017-07-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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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경제부 기자
“3년 전만 해도 서로 갯골(하천)에서 물 끌어가려고 이웃끼리 엄청나게 싸웠지.”

지난달 인천 강화도 송해면에서 만난 김필모 씨(78)의 얼굴에선 가뭄 근심을 찾을 수 없었다. 5, 6월 강수량이 57mm에 그쳐 1973년 기상 관측 이후 최악의 가뭄이었지만 갓 모내기를 끝낸 김 씨의 논엔 물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 지역 논에 물을 대는 다송천의 수심은 2.5m에 달했다.

삭막했던 이웃 간의 정을 되살린 건 바다 건너에서 끌어온 한강 물이었다. 한국농어촌공사와 인천 강화군은 수년째 가뭄이 지속되자 지난해 경기 김포시 신곡양수장에서 강화도 북부 지역 5개 면 지역까지 총 89km의 임시관로를 설치했다. 40억 원에 달하는 예산 마련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힘을 보탰다.

충청권에 집중된 폭우로 인명 피해까지 발생한 장마철에 가뭄 걱정은 뜬금없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대로 된 가뭄대책 마련을 위해선 가뭄이 해소된 것처럼 보이는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여름 장마 피해에 묻혀 가뭄대책은 뒷전으로 밀리는 상황이 매년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뭄이 올 때마다 정부가 내놓는 대책은 비슷하다. 애타는 농심(農心)을 달랜다며 소방차를 끌어와 물을 뿌리고 지하수를 끌어올린다고 요란을 떨지만 정작 장마 피해가 휩쓸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진다. 부랴부랴 예산 책정에 나서지만 정작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장기 가뭄대책도 2015년 12월 발표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30년까지 가뭄 영향을 받지 않는 논밭의 비율을 현재 60%에서 80%까지 확대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았지만, 가뭄 발생 지역이 수시로 변하는 것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서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가 ‘물 관리’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새 정부는 국토교통부의 수자원 관리 업무를 환경부로 이관하며 ‘물 관리 일원화’ 방침을 밝혔다. 국토부의 수자원 개발과 환경부의 수질 관리업무를 함께 추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체 물 사용량의 48%를 차지하는 농업용수 공급은 여전히 농어촌공사와 각 지자체의 몫이다. 정부의 물 관리 일원화 구호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물 부족 국가들은 유역별 관리로 수자원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는 ‘국립가뭄경감센터’를 세워 각종 가뭄 지수를 산출해 유역별로 가뭄 현황을 관리한다. 호주도 행정구역이 아닌 강 유역을 기준으로 수자원을 관리한다. 하천과 저수지 관리를 국토부와 국민안전처, 농림축산식품부, 각 지자체 등이 어지럽게 나눠 맡는 한국보다 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는 제대로 된 ‘물 그릇’을 확보해야 한다. 국내 저수지 1만7300여 개 중 1945년 이전에 설치된 저수지가 약 8800개(51%)에 이른다. 낡은 저수지와 수로에서 새는 물은 연간 6억5000만∼7억 t 정도로 추산된다. 중형 댐 16개의 연간 공급량과 맞먹는다.

강수 편차가 극심해지고 지역별 강수량이 급변하는 한반도의 기상 여건을 고려하면 가뭄을 100% 예방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봄에 화들짝 놀랐다가 여름만 되면 가슴을 쓸어내리고 모든 걸 잊어버리는 잘못된 관행은 끊어야 한다. 강화도의 사례에서 보듯 정답은 정부의 의지에 있다.

박성민 경제부 기자 min@donga.com


#농민#가뭄#물 관리 일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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