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파기’ 배수진 친 北… “트럼프와 좋은 관계” 여지는 남겨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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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협상 중단 위기]최선희 “핵-미사일 실험 조만간 결정”

평양주재 외교관-기자 불러모은 최선희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가운데)이 15일 평양 주재 외신 기자와 외교관들을 상대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선희는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중단을 고려 중”이라고 말한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한의 향후 행동 계획을 담은 공식 성명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평양=AP 뉴시스
평양주재 외교관-기자 불러모은 최선희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가운데)이 15일 평양 주재 외신 기자와 외교관들을 상대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선희는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중단을 고려 중”이라고 말한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한의 향후 행동 계획을 담은 공식 성명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평양=AP 뉴시스
북한이 “핵·미사일 발사 재개를 조만간 결단할 것”이라는 폭탄 선언을 내놓으면서 북-미가 ‘하노이 결렬’ 2주 만에 양보 없는 ‘강(强) 대 강’ 대치 국면에 들어섰다. 북한은 ‘날강도’ ‘기이한 계산’ 등 미국을 향한 말 폭탄을 쏟아내며 비핵화 협상 전면 중단은 물론이고 핵·미사일 도발 재개로 비핵화 협상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새로운 길’에 나설 수 있다며 반격을 한 것. 특히 모든 핵무기·핵시설 폐기를 전제로 한 미국의 ‘빅딜’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하면서 미국의 대응에 따라선 비핵화 협상이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빅딜’ 압박에 핵·미사일 실험 재개 경고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15일 오전 평양 주재 외교관과 외신 기자를 대상으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15개월 중단한 데 대한 상응조치를 미국이 취하지 않으면 대화를 지속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최 부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께서 조만간(a short period of time) 핵실험·미사일 발사 모라토리엄(유예)과 외교적 대화를 지속할지에 대해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핵실험·미사일 발사 중단은 김 위원장이 지난해 3월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하며 내놓은 약속. 당시 김 위원장은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재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빅딜’ 요구를 철회하지 않으면 사실상 대화 파기로 보고 핵·미사일 실험을 재개하겠다는 것.

최 부상은 이날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든 미국과 타협할 의도도, 이런 식의 협상을 할 생각이나 계획도 결코 없다”고 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귀국길에 ‘우리가 이런 기차여행을 왜 해야 하느냐’고 했다”며 “미국의 날강도 같은(gangster-like) 태도는 결국 상황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했다. 북한이 미국의 비핵화 요구를 ‘날강도’라고 비난한 것은 지난해 7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3차 방북 이후 8개월 만이다.

○ 김정은 성명 예고하면서도 협상 여지는 열어둬


김 위원장의 공식성명 발표도 예고됐다. 성명의 내용과 형식은 밝히지 않았지만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새로운 길’ 구상이 담길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대응을 지켜본 뒤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 단계적으로 긴장 수위를 높이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다만 북한 특유의 ‘블러핑(엄포)’ 전략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이 대화의 판을 깨지 않으면서 미국에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얘기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김 위원장 공식성명이 바로 발표된 게 아니라 최 부상의 예고로 그친 건 아직 방향성이 결정된 건 아니라는 뜻”이라며 “실은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을 잠정 중단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면서도 “대화 판은 깨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부상은 이날 폼페이오 장관과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해 “불신과 적대적인 회담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비난하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선 “두 최고지도자의 관계는 매우 좋다”며 정상 간 협상 여지를 남겨뒀다.

○ 북-미 대치 장기화되나


하지만 북한이 예상밖의 강수를 두면서 북-미 대치 상황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미가 기 싸움을 넘어 김 위원장이 모라토리엄을 접겠다고 밝히게 되면 상황은 장기적으로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도 “현재로선 대화의 틀을 깨는 수순이라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북한 입장에선 강 대 강 대치가 장기화될수록 도발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계산된 도발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영변 핵시설에서 무기급 플루토늄(Pu) 생산을 재개해 영변이 여전히 북핵 핵심시설이라는 점을 과시하려 하거나, 민간 위성발사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과시하려 할 수 있다는 것. 아예 실체가 공개되지 않은 신형 ICBM인 ‘화성-13형’ 발사를 시도해 충격 효과를 도모할 수도 있다.

청와대는 “진의 파악이 우선”이라며 북-미 협상 재개를 위한 중재 의지를 강조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캄보디아 총리와의 정상회담 도중 (기자회견 내용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며 “국가안보실에서도 (최선희가) 정확하게 무슨 발언을 했고, 그 발언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각도로 접촉해 진의를 파악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목적지까지 도달해 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도 있고 어려움과 난관도 있지 않겠느냐”며 “(남북) 물밑 접촉은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 프놈펜=한상준 기자
#하노이 노딜#북한#비핵화 파기#트럼프#빅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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