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로…마트로…찜통 더위가 만든 ‘폭염 난민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8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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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 카페에서 주민들이 더위를 피해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 카페에서 주민들이 더위를 피해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 사는 결혼 8년차 전업주부 김모 씨(35·여)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아침을 먹자마자 네 살배기 아이와 집 근처 커피전문점으로 ‘출근’한다. 거실의 에어컨이 지난주 중순 고장이 나면서 최근 닥친 폭염을 견뎌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읽을 책, 갖고 놀 장난감, 자신이 읽을 책 등을 짊어지고 시원한 커피전문점에서 낮 시간을 보낸 김 씨는 저녁엔 다시 이 짐을 이고 친정을 찾아간다. 그는 “에어컨 수리 업체에 물어보니 대기자가 많아 수리까지 최소 1주일은 걸린다고 해서 카페와 친정을 오가며 무더위를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1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찜통더위를 피하기 위해 카페, 마트 등으로 피서를 가는 ‘폭염 난민’들이 늘고 있다. 에어컨이 고장 났거나 멀쩡하더라도 냉방비를 아끼려는 사람들이 필요한 짐을 잔뜩 챙겨 냉방이 잘 된 공공장소를 찾아가는 것이다.

마트 피서객이 늘면서 이마트의 이달 11~17일 매출은 2주 전(지난달 27일~이달 3일)보다 23%, 고객은 27% 늘었다. 직장인 권모 씨(34)는 “퇴근 뒤 아내와 마트를 한 시간 동안 돌며 와인과 맥주를 사서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니 오붓하기도 하고 더위도 피할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고 말했다.

숙박공유 서비스인 에어비앤비로 방을 빌려 무더위를 식히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회사원 정상욱 씨(30)는 14일 용산구의 아파트 한 채를 빌려 친구들과 하룻밤을 보냈다. 정 씨는 “휴가지에 온 기분도 나고, 에어컨을 마음껏 쓸 수 있어 좋았다. 다음달에도 에어비앤비 피서를 또 시도하겠다”고 말했다.

전국 관광지도 피서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해발고도 832m의 강원 평창군 옛 대관령휴게소도 서늘한 날씨 덕분에 인기를 끌고 있다. 밤이면 텐트 20~30개가 설치되고, 캠핑카 20대도 자리 잡는다. 부산 해운대구에 밀집한 주상복합아파트 촌에는 더위를 피하려는 주민들이 은행지점 등으로 몰리고 있다.

13일부터 엿새째 열대야가 지속돼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로 불리는 대구에서는 평일에도 야영객이 몰리고 있다. 대구와 가까운 칠곡 가산산성야영장에는 지난 주말 80여 팀의 캠핑족이 몰렸다. 야영장 관계자는 “평일 저녁에 야영장에 들어와 텐트를 치고 잔 뒤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고, 다시 밤에 캠핑장을 찾는 분들이 있다”고 귀띔했다.

무더위를 피하기 위한 상품들은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GS25는 지난 주말 컵 아이스크림 매출이 전 주말보다 34.6% 올랐다고 밝혔다. 우산, 양산의 매출액은 395.1% 늘었다. 얼음을 생산하는 풀무원의 강원 춘천시 공장에선 14일부터 24시간 생산체제에 돌입해 하루 160t의 얼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겨울의 배가 넘는 생산량이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평창=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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