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앞날 생각하면… 내가 나쁜엄마 될 수밖에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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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기만 한 스라밸]경쟁사회 자식걱정 엄마들의 한숨
“주변 엄마 새 학원 찾아 동분서주… 늦었다는 생각에 사교육 못 끊어
아이 힘든건 알지만 어쩔수 없죠”

“힘든 걸 왜 모르겠어요. 그래도 내가 ‘나쁜 엄마’가 되는 게 낫죠.”

초등학생 딸 두 명을 키우는 김모 씨(40·여)는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욕먹을’ 각오다. 김 씨는 한 달 200만 원을 아이들 교육에 쓴다. 두 아이는 학원을 하루에 2, 3개씩 다닌다. ‘뺑뺑이’를 돌다가 녹초가 돼 집에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면 김 씨도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다. 김 씨는 “내 역량 부족으로 아이들 인생이 잘못되는 걸 보고 싶지 않다. 뒤처지느니 나라도 나서서 아이들을 괴롭히는 게 낫다”고 말했다.

많은 부모가 내 아이의 ‘스라밸’(Study and Life Balance·공부와 삶의 균형)을 지켜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심각한 청년 취업난과 치열한 스펙 경쟁을 목격한 탓에 스스로를 나쁜 부모로 내몰고 있다.

“어차피 사회에 나가도 ‘헬조선’인데 연습한다고 생각해야죠.”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40대 직장인 한모 씨가 15일 기자에게 말했다. 한 씨는 중고교 때 밤 12시까지인 자율학습을 하면서 공부해 명문대에 입학했다. 지금은 대기업 직장인으로 넉넉하진 않아도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한 씨는 “사회에 나가면 정말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좋은 위치를 선점하려면 아이들도 어느 정도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사교육 트렌드와 전쟁터 같은 학원가 분위기를 접할수록 부모는 조바심이 난다. ‘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학원가에서는 1년이 멀다 하고 유행하는 학원과 과목이 바뀐다.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강모 씨(41·여)는 회사일로 바쁜 사이 아이 친구들이 새로운 학원으로 옮겨간 사실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 강 씨는 “학원 옮기는 게 그리 급한 일은 아닌 걸 안다. 그런데 ‘그러려니’ 할 수가 없다. ‘늦었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어머니, 너무 늦으셨어요”로 대표되는 학원가의 ‘공포 마케팅’을 알면서도 넘어갈 수밖에 없다.

학원을 모두 중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소한의 균형, 즉 ‘스라밸’을 맞춰야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향숙 한국아동청소년심리상담센터 소장은 “아이에게 부모가 ‘공부시키는 사람’으로만 각인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부모가 원하는 모습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권기범 kaki@donga.com·김자현 기자
#아이 앞날#나쁜엄마#경쟁사회#자식걱정#스라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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